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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 “화려하지 않았다, 평범한 선수로 기억되고파”

입력 | 2019-06-19 18:03:00

"꽃범호 별명, 마음 속에 새기겠다"
"남은 타석 눈을 부릅뜨고 할 것"




은퇴를 선언한 이범호(38·KIA 타이거즈)의 표정은 밝았다.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이범호는 18일 구단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5월1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범호는 계속 잔류군에 머물다가 최근 은퇴 결심을 굳혔다.

KIA 구단은 개인 통산 1995경기에 출전해 2000경기 출장 대기록을 앞두고 있는 이범호를 배려해주기로 했다. 7월13일 한화 이글스와의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하는 이범호는 19일 1군 선수단에 합류해 앞으로 동행한다. 조만간 1군 엔트리에 등록돼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할 때까지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19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리는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1군 선수단에 합류한 이범호는 “막상 결심을 해놓고도 구단에서 발표를 한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더라. 이제 돌이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1군에 올라왔을 때 경쟁력이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판단해줄 수 없고, 내가 판단해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내려오려 했다”며 “올해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2군에 내려갔을 때 마지막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어야 내년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거면 올해 정리하자고 생각했다”고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개인 통산 17개의 만루홈런을 쳐 이 부문 역대 1위에 올라있는 이범호는 “만루홈런을 많이 치지 못했는데, 언론이나 팬들이 자꾸 이야기하니 만루 찬스에 자신감이 생기더라. 투수들도 생각하지 않겠나. 나도 편하게 치자는 생각을 했다. 만루가 되면 공격적으로 쳤다”고 떠올렸다.

현역 시절 내내 ‘꽃범호’라는 별명으로 불려 온 이범호는 “별명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 다시 야구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지 모르지만, 영원히 함께할 것 같다”며 “지도자가 되거나 다른 쪽 일을 해도 팬들이 생각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감정으로 마음 속에 새기고 있겠다”고 말했다.

팬들의 기억에 어떤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고 답한 이범호는 “중요할 때 한 방씩 쳐주는 선수, 야구를 너무 좋아하고 20년 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고교 졸업하고 와서 경기를 뛰었으니까 지금까지 자리를 잘 지킨 선수가 아닌가 싶다. ‘평범한’이 가장 좋지 않나”라며 웃었다.

은퇴식 전까지 1군 경기에 나서는 이범호는 “앞으로 5타석, 많게는 7타석에 들어설 것 같다. 함평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고, 기술 훈련을 별로 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보충하면 준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너무 잘 치면 팬들이 아쉬워하지 않겠나. 눈치껏 치겠다”고 농담하더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하겠다”고 다짐했다.

박흥식 KIA 감독대행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앞두고 가는 곳마다 추억을 되새기라고 이범호를 빨리 불렀다. 상황을 봐서 1군 엔트리에 등록할 것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나갈 수도 있다”며 “만루 기회 때도 고려해보겠다. 이슈가 되지 않겠나”고 기대했다.

◇다음은 이범호와 일문일답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나.

“은퇴식 때 한 번만 흘릴 것이다.”

-막상 발표하니 기분이 묘하지 않던가.

“구단에 얘기를 다 해놓고 오늘 기사 뜬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준비해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한다.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팀이 돌아가는 분위기라든지, 1군에 올라왔을 때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판단해줄 수 없으니 내가 판단해서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내려오자고 생각했다. 35, 36살부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올 시즌 하면서 느낌이 ‘이제 그만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프링캠프 끝나고 2군으로 내려갔을 때 이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군에 내려와서 준비하고 올라가면 어느정도 기간이 걸릴까, 선수 생활을 길게 하면 어느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니까 길어야 내년까지겠다고 답이 나왔다. 길어야 내년까지 할거면 올해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평이 왔다갔다하기 너무 멀다. 여기까지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심했다.”

-목표했던 2000경기를 이루게 됐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타율도 좋은 것이 아니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홈런 만큼은 밀어붙여야겠다, 밀어붙일 것은 그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승엽 형 기록을 못 넘을 것 같고, 양준혁 선배 기록인 351개에는 도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홉수에 걸려서 끝난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그걸 제외하면 아쉬운 것이 없다.”

-가족들이 뭐라고 하던가.

“제 선택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보자고 했다. 아내를 설득했다. 더 해야 내년까지고, 다른 쪽에서 야구를 할 수도 없으니 올해까지 마지막인 것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까지가 맞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내가 흔쾌히 고생했다고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자고 하더라.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고 고맙다.”

-몇 경기 더 나서게 되는데 마지막 타석을 그려본 적이 있나.

“20년 프로 생활을 하니까 마지막이 언젠가 오겠지 생각했다. 와서 어떤 타석에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을 못했다. 과연 올까 반신반의했다. 상상한 것은 없다. 마지막에 타석 들어갔을 때 팬 분들이 박수를 쳐주시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루 상황에 내보낼 생각도 있으시다고 하던데.

“도전해보는 것이 맞는데, 팀에 피해가 가는 상황이면 아닌 것 같다. 점수 차가 많이 나는데 만루 찬스가 와서 내보내주면 감사하다. 은퇴해서 배려한다고 하면 미안하다. 1위면 여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다. 연습하면서 칠 수 있는 몸을 만들어놓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감독님이 어떤 상황에 내보내주실 지 모른다. 1군 엔트리에 등록되려면 열흘에서 보름 정도 시간이 있을 것 같으니 준비를 해보겠다.

-역대 KIA 선수 가운데 타 구단 출신으로 첫 은퇴식인데.

”그런 것 때문에 뿌듯함을 가지고 있다. 명문 팀에서 은퇴를 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타이거즈 출신이 아닌 선수를 은퇴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좋다. 이 팀으로 와서 한 단계 올라가고, 성숙해지고, 이미지가 좋아지는 계기가 됐다. 한화 이글스에서 경기를 해도 사람들이 잘 못 알아봤다. 야구를 하면서 튀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는 팬 분들이 너무 환대해준다. 광주가 유독 그렇다. 이 정도가 아닌데, 그 정도 이상의 환대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이 팀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결정도 빨리 내린 것 같다.“

-잊지 못할 순간이 있다면.

”프로 처음에 들어왔을 때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화에 지명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거짓말인줄 알았다. 시골에 있는 팀에 있는 선수를 2차 1번으로 뽑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이 생각난다. 한국시리즈 우승할 때 만루홈런 친 기억도 많이 남는다. 프로에 못 들어올 줄 알았는데 지명해주셔서 프로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마지막 날 되니 기억이 많이 난다.“

-WBC에서 동점타 쳤던 것.

”그 때 홈런을 쳤어야 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했으니 그런 기억도 좋다. WBC에 대한 추억도 많다. 어쩌다 뽑혀서 한 단계 올라가는데 도움이 됐다. 내가 빠진 이후 본선을 못 가지 않았나.(웃음)“

-꽃범호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다. 다시 야구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지 모르지만, 영원히 함께할 것 같다. 지도자가 되거나 다른 쪽 일을 해도 팬 분들이 생각하는 것은 영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감정으로 마음 속에 새기고 있겠다.“

-계획은 전혀 없나.

”9월에 어느정도 계획이 잡혀있다. 그런데 확실히 결정되지 않았다. 9월에 일본 팀으로 넘어갈 것 같다. 중간에 잘 안 받아주더라. 어떻게 연결이 되서 9월에 넘어가서 10, 11월까지 하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뛰어봐서 오래 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2, 3개월 일본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잘 풀려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구단과 상의가 잘 되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

-어떤 공부를 하고 싶나.

”야구 공부를 조금 더 해야한다. 기록만 가지고 선수들을 상대할 수 없다. 미국 야구는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지 봐야지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며 가지고 있었던 타격, 수비에 대한 지식을 검증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증해보고 후배들을 가르치거나 다른 쪽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알고 하는 것과 막무가내로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사람 상대하는 공부도 해야한다. 요즘 젊은 선수들은 생각이 다르다. 미국화 된 선수들이 많다. 미국에 가서 젊은 선수들을 어떻게 상대할 지 느껴보고 와야할 것 같다. 고지식한 생각으로 젊은 선수들을 상대하면 안된다. 조금 더 유연해져야 할 것 같다.“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러 가는건가.

”큰 맥락으로 보면 그렇다. 젊은 선수들은 대화가 안되면 다가오지 않는다. 다가오지 않으면 손해인데 하지 않는다. 다가오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큰 물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

-야구 선수 이범호를 만든 은인을 꼽는다면.

”이범호를 만들었다고 하니 어릴 때부터 포함해야 한다. 박태호 영남대 감독님이 어릴 때 그저그런 선수를 연습을 많이 시켰다. 대구고 시절 38도, 40도에 혼자서 펑고를 받았다. 그걸 3년 동안 하면서 나를 단련시킨 분이다. 정영기 스카우트도 은인이다. 자기 목을 내놓으면서까지 나를 뽑아야 한다고 외치셨던 분이다. 전패를 한 팀에서 뛰었는데 나를 뽑았다. 그 때 2무 13패를 했다. 내가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신 김인식 감독님도 은인이다. 김인식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WBC도 못 나갔을 것이다. 즐겁게 야구한 것은 김기태 감독님과 있을 때였다. 다른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하겠다.“

-20년간 현역 생활을 했는데 어떤 선수로 남고 싶나.

”나는 화려한 선수가 아니었다. 3할도 많이 못 쳐봤다. 중요할 때 한 방씩 쳐주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야구를 너무 좋아하고 20년 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고교 졸업하고 와서 경기를 뛰었으니까 지금까지 자리를 잘 지킨 선수가 아닌가 싶다. ‘평범한’이 가장 좋지 않나.“

-20년도 의미있지 않나.

”19년이었으면 은퇴하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21년이나 20년이나 똑같을 것 같았다.“

-통산 만루홈런에서 압도적인 1위다. 찬스에서 강한 이미지가 있는데 자부심이 있나.

”언론이나 팬들이 선수들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그 전까지 만루홈런을 많이 치지 못했다. 나도 이야기를 자꾸 듣고, 투수들도 생각하지 않겠나. 나는 편하게 치자는 생각을 했다. 만루만 되면 공격적으로 쳤다. 초구, 2구에 승부를 보자는 생각으로 많이 쳤다. 만루가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조금 더 부드럽게 방망이를 많이 쳤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 중요한것 같다. 주변에서 자꾸 말하니 만루에 나가면 홈런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 인사는 없나.

”은퇴식 때 해야죠. 2000경기 한 뒤에나 하겠다.“

-5타석 남았나. 잘 치면 후회하지 않을까.

”마지막 경기는 선발 출전하지 않겠나. 적게 5타석, 많게는 7타석 남았다. 조금 그렇다. 남은 타석은 즐겁게 치고 잘 마무리하겠다. 잘 치면 안될 것 같다. 나는 홀가분한데 팬 분들이 아쉬워하면 안되지 않나. 너무 화려하지 않게, 눈치껏 치겠다. 못 치는 것이 아니라 눈치껏 안 치는 것이다.(웃음)“

-몸 상태는 어떤가.

”함평에서 조금 놀았다.(웃음)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기술 훈련을 별로 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보충하면 5타석, 7타석 정도는 준비가 될 것 같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눈을 부릅뜨고 하겠다.“

-한화와의 경기에서 은퇴하는데.

”한화랑 경기에서 은퇴하고 싶었다. (김)태균이라도 한 번 안고 가려고 한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