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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당초 “표류선박 식별 힘들어”… 실제론 엔진 가동해 항구 진입

입력 | 2019-06-20 03:00:00

[北어선 삼척항 노크귀순 파문]




15일 강원 삼척시 삼척항 부두에 정박한 채로 우리 주민에게 발견된 북한 어선은 ‘출항지령서(조업허가증)’를 받은 뒤 중국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해도를 싣고서 9일 함경북도 경성군의 한 어촌항을 출항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8일 북한 관계당국에서 출항지령서를 얻은 뒤 다음 날 소형 목선(1.8t)을 타고 나온 뒤 동해 북방한계선(NLL) 근처까지 내려와 위장조업을 하다가 12일 NLL을 넘어 남하했다. 이후 GPS와 해도에 의지해 경북 울릉도 인근 해상을 떠돌다가 15일 오전 6시 20분에 삼척항 방파제 부두에 접안했다. 군의 경계작전 실패로 초래된 북 어선의 ‘해상 노크귀순’ 파문이 확산되면서 해당 부대는 물론이고 군 지휘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군은 17일 관련 브리핑에서 “조사 결과 해상·해안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가 주민 증언과 촬영사진 등을 통해 귀순의 전말이 공개되자 19일 경계 미비와 실책을 뒤늦게 인정했다.

○ NLL 넘어와 사흘간 기다리다가 ‘대기 귀순’

정부당국에 따르면 9일 경성군을 출항한 북한 어선은 12일 오후 9시경 동해 NLL을 넘은 뒤 사흘간이나 울릉도와 강원 강릉 삼척 앞바다를 떠돌다가 15일 오전 6시 20분 삼척항 부두에 정박했다. 군 당국자는 “북 어선은 삼척항 먼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대기하다가 15일 새벽에 시동을 걸고 귀순을 강행한 걸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당시 동해 NLL 일대의 해군 함정과 해상초계기 등 감시전력은 북한 어선의 NLL 남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육상에 배치된 지능형 영상감시장비도 삼척항으로 들어오는 북 어선을 포착했지만 우리 어선으로 판단했다고 군은 설명했다. 앞서 군은 17일 브리핑에선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또 군은 당초 북 어선이 표류하다가 떠내려오는 바람에 레이더 등으로 포착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가 19일 브리핑에선 자체 동력(28마력 엔진)으로 삼척항에 들어왔다고 말을 바꿨다. 군은 당시 북 어선의 부두 정박 후 1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병력이 현장에 출동한 사실도 19일에야 처음 공개했다. 하지만 북한 어선에 GPS가 장착된 사실은 17일과 19일 브리핑에서 모두 공개하지 않아 구체적인 귀순 경로 노출과 이에 따른 경계 실패 책임론을 피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서울 사는 이모와 통화하게 휴대전화 빌려달라’

북한 주민 4명 중 2명은 처음부터 귀순 의사를 갖고 출항했다고 진술했다고 군은 밝혔다. 이 때문에 나머지 2명은 본인 의사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송환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 주민 1명은 “북한에서 내려왔다. (탈북해서) 서울에 사는 이모와 통화할 수 있게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말했다고 군은 전했다. 군 당국자는 “북한 주민은 인민복과 군복, 작업복 차림이었고, 정부합동조사에서 모두 민간인으로 1차 확인한 뒤 구체적 신분을 추가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중 한 명은 북한에서 배우자와의 불화로 귀순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경계작전 실태를 꼼꼼히 되짚어보고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군이 경계 실패를 숨기려고 쉬쉬하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안보의 무장해제를 가져온 국방부 장관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