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런 야구계에서 서울대는 참으로 애매한 팀이다. 공부로는 한국 최고일지 몰라도 야구로는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옛날 얘기지만 서울대와의 경기에서 실점을 했다는 이유로 상대 팀 감독이 벤치에서 자기 팀 선수들을 때린 적도 있다. 엘리트 야구 선수 출신이 거의 없는 서울대 야구부는 ‘동네 북’ 취급을 받았다.
서울대의 반란은 지금까지 딱 한 번 있었다. 2004년 9월 1일 열린 전국대학야구추계리그 예선에서 송원대를 2-0으로 꺾었다. 1무 199패 후 거둔 첫 승리였다. 전무후무한 승리를 이끈 사람은 탁정근 감독이었다.
중학교 때 야구를 잘 못했던 선수,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선수들을 주로 뽑았다. 야구를 한 적은 없지만 꼭 하고 싶어 하는 선수도 받아들였다. 조건은 딱 하나였다. “야구를 하되 학교생활은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18일 열린 황금사자기 1회전에서는 광명공고에 콜드게임으로 지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지만 선수들은 즐겁게 야구를 한다. 서울대 야구부는 첫 승리까지 27년이 걸렸다. 하지만 세현고는 주말리그에서 이미 두 차례나 승리를 맛봤다.
탁 감독은 “운동과 공부를 함께하면 긴 인생에서 선택지가 늘어난다”며 “반드시 운동으로만 성공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어떤 일이든 열심히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4년 서울대 야구부의 1승 멤버 중에는 프로야구에서 일하는 사람이 꽤 된다. 박현우와 신동걸은 각각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와 운영팀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최우석 KT 위즈 운영팀 과장도 서울대 야구부 투수 출신이다. 탁 감독은 “서울대 야구부 때 맺은 인연이 지금도 끈끈히 이어지고 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서로 도우면서 산다”며 “세현고 제자들에게도 함께 땀 흘렸던 지금이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