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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 발의 ‘서울민주주의위원회’ 무산 배경인 시민참여-숙의예산제… 시민참여 취지 좋지만 전문-대표성 숙제

입력 | 2019-06-21 03:00:00

참여제, 시민이 아이디어 제안하고
선정된 사업 예산 직접 편성… 숙의제는 정해진 사업의 예산 심의
“특정지역 이익에 휘둘리기 쉽고… 시의회 예산심의와 업무 겹쳐” 지적




재적 의원 110명 가운데 102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서울시의회에서 같은 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의한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설치에 관한 조례안이 부결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민주주의위원회가 무엇이기에 같은 여당 시의원들이 설치에 반대하고 나선 걸까.

○ 핵심은 시민참여·숙의예산제


서울민주주의위원회(민주주의위)는 서울시의 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에 시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민관 합의제 기구다. 민주주의위의 핵심은 시민참여예산과 시민숙의예산이다.

시민참여예산제(참여제)는 시민이 제안한 사업이나 정책 아이디어 가운데 선정된 것의 예산 편성에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다. 2012년 시행돼 현재 시민 300명이 참여예산위원으로 활동한다. 이번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했으면 민주주의위 기능으로 편입될 예정이었다.

시민숙의예산제(숙의제)는 올해 시범사업으로 도입됐다. 특정 분야의 사업이나 정책에 편성된 예산이 적절한지 심의한다. 올해는 사회혁신 여성 복지 환경 민생경제 시민건강 등 평상시 시민단체와 의견 교류가 활발한 6개 분야에서 사업비 23억∼400억 원 규모 예산안을 숙의한다.

숙의 주체는 사업(정책) 대상이 되는 시민과 전문가, 공무원 등의 ‘좋은예산시민회’다. 주제별로 15∼20명의 위원이 모여 사업 내용과 예산 규모 등을 논의한다. 지난달 활동을 시작했다. 좋은예산시민회 회의에는 ‘온시민예산광장’의 온라인 의견을 반영하도록 돼있다. 온시민예산광장은 참여제 위원 300명과 시가 무작위 추출하거나 시 예산학교를 수료한 시민들로 구성된 온라인 논의기구다. 숙의를 거친 예산은 민주주의위 의결을 거쳐 시 예산안에 편성된다.

○ 숙의제의 숙제, 대표성과 전문성


“이해관계에 따라 반응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애를 키우니까 육아가 제일 중요하다’ 같은 생각은 위험합니다.”

이달 초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사회혁신 분야 좋은예산시민회 3차 회의 끝 무렵 한 위원이 숙의제가 사적 이익을 대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숙의제의 가장 큰 숙제는 숙의제에 참여하는 시민의 대표성이다. 좋은예산시민회 위원은 분야별로 시의 해당 부서에서 임의로 정한다. 이들이 과연 전체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느냐, 특정 이익을 대변할 우려는 없느냐는 물음에 서울시도 뾰족한 답은 없다. 또 시민이 선출한 시의원보다 대표성이 부족한 시민이 먼저 예산 심의를 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과 함께 사실상 시의회의 중요 업무인 예산 심의와 중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의 ‘좋은예산시민회 추진 방안’은 “전문가와 시민, 정책 대상자로 구성하되 특정 단체나 지역 등에 지배되지 않도록 구성한다”며 회의의 모든 내용을 담은 속기록을 온시민예산광장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참여할 시민 확보도 만만치 않다. 전화로 무작위 추출해 1000명을 모집하려면 두 달가량 걸린다. 이번 조례안이 통과됐어도 올해는 사실상 가동이 불가능하다.

시정(市政) 전반을 파악하지 못한 채 개별 사업이나 정책에 대한 예산을 숙의하려면 필요한 고도의 전문성을 시민들이 갖출 수 있을지 우려도 나온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