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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인사이트]“5G기지국-데이터센터도 안돼”… 막연한 불안이 키운 ‘新님비’

입력 | 2019-06-21 03:00:00

新산업 발목잡는 지역이기주의
쓰레기장-화장터 ‘님비’와 달리 실체 모호한 전자파 유해물질 기피
과학적 ‘무해성’ 입증-설득에도 높아진 환경감수성 충족못해 좌초
선호했던 대기업연구소마저 꺼려… 산혁명 필수 인프라 설치
정부가 사회적 의견통합 이끌고… 페북 ‘데이터센터 랜드마크’처럼
기업도 주민과 공존방안 모색해야




사회적으로 ‘환경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5세대(5G) 통신 기지국, 데이터센터, 기업 연구소 등 신사업 관련 설비들에 대해서도 님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아파트 입주민단체 설득 다니고 주민 요구에 일일이 맞춰 위치를 조정하다 보면 5세대(5G) 기지국을 언제 다 설치하나 싶습니다.”

최근 통신사 5G 기지국 구축 현장 담당 부서에선 이런 푸념이 나온다. 5G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 석 달째로 접어들었지만 이용자들 사이에선 “건물만 들어가면 잘 안 터진다”는 불만이 여전하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서는 5G 기지국 구축이 시급한데도 정작 통신사가 5G 기지국이나 중계기를 설치하려고 하면 “전자파 나올까 봐 무서우니 다른 데 설치하라”며 반대한다는 것이다.

○ 신(新)님비 등장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등의 영향으로 국민들이 환경 이슈에 민감해지면서 혐오시설이 주변에 들어서는 걸 기피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존에는 쓰레기장이나 화장터 등 동네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시설을 반대했다면 이제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전자파나 대기업 연구개발(R&D) 시설까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환경 감수성이 ‘신(新)님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무해성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고 주민 설득에 나서 보지만 투자 계획이 무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A통신사는 최근 서울 중랑구 신내동과 노원구 상계동, 은평구 증산동 아파트 단지에서 전자파 피해를 우려한 주민 반대 때문에 5G 기지국 설치를 잠정 보류 중이다. B통신사도 기지국 설치 반대에 나선 경기 화성시 영천동 아파트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기지국 전자파의 무해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이미 설치된 통신3사 공용 기지국을 옮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5G 기지국 반대에 나선 주민들은 ‘5G 주파수가 4G(LTE)에 비해 고주파이므로 인체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은 이미 지난해 말 “내부 실험 결과 5G 전자파의 유해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김남 충북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현재 통신3사가 기지국을 설치하고 있는 5G 주파수 대역은 3.5GHz 대역이다. 기존에 국내외에서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던 대역(1.7GHz, 2.6GHz 등)과 큰 차이가 없는 구간이어서 전자파 우려는 기우”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파법에 따른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에 따라 기지국 전자파등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기지국을 신설할 때마다 전자파 측정시험 기준을 만족하는 경우에만 설치 허가를 내주고 있다.

주파수의 유해성 논란은 앞서 2016,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에도 반대 근거였다. 하지만 실제 유해성 측정 결과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로 인한 인체 유해성은 특별히 없었다. 김 교수는 “단순히 주파수가 높아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과학적 입증도 통하지 않는 실체 없는 공포

신님비의 특징은 전자파 같은 실체가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하기에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데이터만으로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시민들의 높아진 환경 감수성 기준을 충족하는 데 갈수록 어려움이 커지는 이유다.

얼마 전 경기 용인시에 지으려던 데이터센터 계획을 철회한 네이버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 이미 50여 곳의 데이터센터가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땅 인근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일부 주민은 전자파나 냉각수 증기 배출, 디젤 비상엔진의 매연 등을 이유로 거세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강원 춘천시에서 제1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네이버는 일반 주거단지 수준과 차이가 없는 데이터센터 전자파 수치를 내놨다. 또 냉각수 증기는 일반 수돗물의 수증기라는 점, 디젤 비상엔진은 시험용일 뿐이고 연 2회, 3시간 미만으로만 가동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지난해 8월부터 1년 가까이 주민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5400억 원짜리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은 좌초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설립을 찬성한 주민들은 “반대 측 주민들이 왜곡된 자료로 주민들의 공포감을 조성했다”며 “허탈하다”고 토로했다.

과거엔 선호 시설에 해당했던 대기업 연구소도 주민 반발에 부닥쳐 설립 계획이 무산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22년까지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일대에 조성하려던 도시첨단산업단지 조성계획을 올해 초 취소했다. 산업단지 인근인 처인구 이동면에 함께 조성하려던 뷰티산업단지 계획도 전면 백지화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경영환경 변화로 투자보다 기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철회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유해물질 배출과 환경오염 우려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했던 산업단지 인근 지역 주민들은 공사 과정에서 환경오염과 소음 및 분진 등이 우려된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내세웠다. 또 완공 후에도 주택가 옆 연구시설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나 오·폐수로 인해 각종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용인시를 통해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공청회를 여러 차례 열고 “연구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할 경우 전문 처리 설비로 안전하게 관리하며, 제조 공장이 아니기 때문에 오·폐수 배출은 극히 적다”며 설득에 나섰지만 여론을 돌리진 못했다.

앞서 한국콜마 또한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통합연구소를 짓기 위해 2016년에 터를 매입했지만 정식 착공에 이르기까지 곡절을 겪어야 했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연구소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실험용 유해물질은 외부 전문 업체에 위탁 처리한다는 내용을 약속한 뒤에야 프로젝트를 겨우 진행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문제가 민감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예전엔 으레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우리 동네에 세워 달라)’의 대상이었던 대기업의 R&D 시설까지 혐오시설이 됐다”고 말했다.

○ 신성장산업 발목 잡아선 안 될 것

신님비의 등장은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고 일상생활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첨단 산업에 대한 인식이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신님비 현상이 차분한 토론과 공론화 과정 등 생산적인 논의로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신성장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이달 10일까지 구축된 5G 기지국 수는 6만1246개다. 업계 추산 연내 목표치는 20여만 개로 갈 길이 바쁘다. 통신업계서는 “5G 서비스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초기 상태라 망 구축 속도와 전국 서비스 환경을 선점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클라우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4차 산업혁명의 필수 요소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센터는 심장에 해당한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쟁쟁한 정보통신기술(ICT) 공룡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미 아마존, MS, 오라클 등은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님비 현상이 근거가 희박한 루머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사회적인 의견 통합이나 지원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재훈 연세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식상할 정도로 많이 얘기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토종 데이터센터 설립이 좌절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며 “분초를 다투는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국가적인 전략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하고 주민과 기업 간 조정 지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에게 좀 더 와 닿을 수 있는 공존 방안을 기업이 제시할 필요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은 싱가포르 데이터센터에 10억 달러를 들여 지역 랜드마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며 “주민들을 위한 활동 공간이나 환경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