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지음/252쪽·1만5000원·돌베개
300쪽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손 위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쭙잖은 깜냥에 누가 되진 않을까. 돌덩이가 켜켜이 쌓여간다. 그래도… 그간 그 무게를 비켜난 채 살아왔기에. 지금이라도 귀를 열고 문장을 곱씹는다.
이 책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2014년 대기업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김동준 군. 2017년 생수공장에서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 그리고 또 수많은 청소년의 죽음. 그들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을 다니다 ‘현장실습생’이란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장시간 노동과 차별, 게다가 폭력까지. 주 원인이 사고였든 자살이든, 결국 사회가 빚은 그늘에 갇혀서 삶을 멈춰버렸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 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 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물론 이 책은 절망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과 또 다른 ‘아이들’의 헌신과 용기를 보며 내일을 꿈꾼다. 그 미래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며…. ‘겸손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2년 넘게 취재와 집필에 공들였다고 한다. 이런 인터뷰 정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는데, 소문으로 들어 갖고 있던 기대보다 훨씬 대단한 필력을 지녔다. 그건 분명 고뇌와 진심의 산물이리라.
문득 책을 덮고 나니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겉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김동준 군의 유품인 듯한 노트 한 권. 거기엔 ‘Be Happy’란 글자가 큼지막하다. 제발, 그러길. 그곳에선 행복해라.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