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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이야기]커피와 와인이 사라진다면

입력 | 2019-06-22 03:00:00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

매일 마시는 커피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전 세계에서 매일 22억 잔이 소비되는 커피는 한국에서도 대표적 기호식품이다. 지난달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애칭을 가진 ‘블루보틀’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을 내자마자 길게 늘어선 줄은 커피의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문제는 30년 뒤엔 기후 변화로 인해 블루보틀과 같은 고급 커피뿐 아니라 커피 자체를 구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2016년 호주 기후학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2050년경에는 커피 재배 가능 지역이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2080년경에는 야생 커피가 멸종한다고 예고했다. 커피를 만드는 커피콩은 대부분 평균기온이 20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연간 강우량이 1500∼1600mm에 해당하는 적도에서 북위 25도, 남위 25도 사이의 열대-아열대의 ‘빈 벨트(Bean belt)’에서 생산되는데 기후 변화로 이 지역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 좋은 커피를 생산하기 위해선 원두를 천천히 숙성시켜 깊은 풍미를 끌어내야 하는데, 기온이 상승하면 원두가 빠르게 숙성돼 그 맛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커피만큼이나 기후 변화에 민감한 것이 와인이다. 포도 품종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양조에 쓰이는 품종은 대체로 중동지역이 원산지인 탓에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란다. 양조용 포도 품종은 특히 기온 변화에 민감해 낮 기온이 너무 높아지면 수분을 빼앗겨 광합성이 줄어들고, 야간 기온이 높아지면 포도당이 포도로 이동하지 못해 와인 질이 떨어진다. 2013년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50년 뒤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의 와인 산지 중 5분의 4에 해당하는 지역이 양조용 포도 품종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로 바뀔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산업 모두 기후 변화의 위기를 인지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는 점이다. 스페인의 한 유명 양조장은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매년 100m씩 높은 땅을 사 새로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양조장은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았던 중세시대의 포도 품종을 부활시키는 연구에도 힘쓰는 등 다각도로 대응 중이다. 영세 농장이 많은 커피산업은 보다 적극적인 방법들을 추진하고 있다. 비영리 단체들을 중심으로 ‘기후 스마트 농업(CSA)’이란 이름하에 커피 산지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물길을 잡을 뿐 아니라 커피 농부들에게 커피 산업의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교육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농가의 날씨 경영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고랭지 배추 정도가 성공 사례다. 날씨 경영에 있어 가장 시급한 분야는 커피나 와인과 같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곡물 자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가 2017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4%로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인 102%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수치는 더욱 떨어질 수 있다. 커피와 와인 산업의 사례처럼 기후 변화가 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날씨 경영을 적극 활용해 21세기판 보릿고개를 피해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이사·기상산업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