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정경두 국방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어선 귀순 사건에 대해 정 장관에게 “철저하게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병기 기자
최근 여권에선 북한 어선 귀순 파문을 두고 노 전 대통령의 ‘다이너마이트론’이 회자된다. 의혹을 위기로 키운 청와대와 군의 대응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를 깊게 묻은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다.
그만큼 ‘해상 노크 귀순’ 사건으로 비화한 이번 사태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청와대는 15일 북한 주민을 태운 어선이 삼척항 방파제에 들어와 있다는 주민 신고가 112에 접수된 지 18분 만에 핫라인으로 해경의 긴급 상황보고를 받았다. 이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 국정상황실, 합동참모본부로 구체적인 귀순 과정이 담긴 상황보고서가 전파됐다. 북한군 특수부대에 지급되는 위장 무늬 군복을 입은 북한 주민이 3중 해상경계망을 뚫고 삼척항에 배를 댈 때까지 군과 해경이 포착하지 못한 만큼 경계 실패에 대한 비판은 피해 가기 어려운 상황. 당일 오후 해경이 이미 북한 어선 남하 사실을 공지하고 관련 보도가 쏟아졌지만 청와대와 군은 17일 첫 브리핑 때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책임 인정과 사과 대신 무시와 방관으로 첫 이틀을 보내며 전형적인 위기 대응 실패 단계를 밟아 나간 셈이다.
파문의 불씨가 청와대 책임론으로 옮겨붙은 뒤 전면에 나선 청와대의 대응은 더욱 아쉬웠다. 청와대는 “축소·은폐 의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끝내 경계 실패에 대해선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어선 귀순 사태에 대한 보도를 ‘사고’로 규정하며 “그런 보도가 나가선 안 됐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다”고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만 해도 군이 북한 주민의 귀순을 당일 공개한 사례는 차고 넘치는데도 침묵으로 사태를 키운 정부의 대응이 정상적이라는 주장이다. 뒤늦게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안보실도 소홀함이 있었다”고 청와대의 책임을 인정하고 나섰다. 하지만 축소·은폐 논란을 스스로 키운 청와대와 군의 대응은 그저 소홀함으로 치부하기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노크 귀순 사태 당시 “6·25전쟁 때 북한 체제가 싫어 피란 온 피란민의 아들이고 특전사 군 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안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후보가 바로 저”라고 했다. 안보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이제라도 책임을 인정하고 잘못된 대응으로 위기를 키운 청와대부터 철저히 조사해 기강을 다시 세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청와대에 걸린 ‘춘풍추상(春風秋霜·남을 대하기는 봄바람처럼 관대하고 자기를 대할 땐 가을 서리같이 엄격해야 한다)’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