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Bill Callahan ‘Too Many Birds’(2009년)
시인과 촌장 3집 ‘숲’에 가시나무의 기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숲은 숲이되 이런 숲이 아니었으리라. 마지막 곡 ‘숲’의 말미에서 카메라가 멀어지듯 음향이 스피커에서 멀어질 때의 절경은 첫 곡 ‘가시나무’의 도입이 없었다면 그저 그랬을 것이다. 하덕규는 ‘가시나무’에 대해 오랜 기도 끝에 받은 응답이라 믿는다고 했다. 이 노래는 그만큼 종교적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기독교적 ‘내 탓이오’ 세계관이 첫 줄부터 노래의 국경에 불 칼을 심는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는 나는 거의 죽일 놈, 그 이상이다.
노래 속에서 새는 대개 인간이 품어줘야 할 여리고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시나위의 ‘빈 하늘’에서 새는 새장 속에 갇혀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은 산을 보며 울 뿐이다. 노래하던 ‘나’는 끝내 새장 문을 열어준다. ‘내 마음은 새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밥 말리의 새는 또 조금 다르다. 인간에게 찾아온 희망의 전령사다. ‘Three Little Birds’에서 세 마리의 카나리아는 문가에 나란히 서 노래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다 잘될 테니까.’
여기 또 한 마리의 검은 새가 있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 캘러핸의 앨범 ‘Sometimes I Wish We Were an Eagle’(사진)에 실린 곡 ‘Too Many Birds’. 하덕규가 내 속에 내가 너무 많다고 했던가. 이번엔 새의 관점이다. 온갖 새가 나무 한 그루에만 가득 매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검은 새는 앉을 곳이 없다. 하늘 가득 비명 지르는 검은 잎들만 날리고 밤새 쉴 곳을 찾던 그 새는 결국 딱딱한 돌 위에 내려앉았다.
가슴 쥐어짜는 절창도, 세련된 화성도 없는 이 투박한 노래 분위기가 새의 신세를 칠한 무채색 물감 같다. 마지막 문장은 절박하고 섬뜩하다.
‘한 번의, 한 번의 심장 박동을 위해 심장 박동을 멈출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