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항 방파제에 북한 어선 들어와” 해경 보고 받은 靑, 국방부와 협의… 대통령은 어디까지 보고 받았나 거짓브리핑 묵인했다면 국민 속인 것, 몰랐다면 보좌진에 우롱당하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노크 귀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일주일 이상 우리 군이 폐쇄회로(CC)TV로 북한군을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해당 부대에서 10월 2일 최초 보고 때 잘못 보고했다가 다음 날 ‘문 두드림 발견’으로 다시 보고했음에도 합참은 물론 국방장관까지 뭉개버린 탓이다.
그나마 그 사건은 현 집권당인 야당의 김광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동부전선이 뚫렸다”고 폭로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최초의 허위보고, 태만 등이 부대 대대장과 합참 통제실 실무 선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장관 사과와 장성 등의 엄중 문책으로 마무리됐다.
정부 발표와 달리 북한 어선은 삼척항 민간 항구에 유유히 정박했고, 우리 어민들은 해상 경계가 뚫렸다며 불안해한다는 KBS 보도가 다음 날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이 뉴스를 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날 대통령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고, 국가안보실의 소홀함이 있었다고 청와대 대변인 고민정이 22일 뒤늦게 페이스북에 천기누설 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이 문 대통령에게는 정확하게 보고를 했는지 여부다. 북유럽 순방 후 16일 귀국해 17일 연차휴가를 쓴 대통령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를 수 있다.
만일 문 대통령이 해경 보고는 물론 청와대-국방부 협의 사실까지 알면서도 국방부의 거짓 브리핑을 묵인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신뢰성 있어 보이는 외양 덕분에 운동권 86그룹에 택군(擇君)됐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이걸로 끝이다.
대통령이 어제 통신사 합동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비핵화와 연계시켜 말한 적 없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설령 김정은은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작년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주요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 것이 한미동맹 와해, 주한미군 철수로 가는 길이다.
군 일각에선 군 수뇌부와 청와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게 대통령을 돕고, 정부의 대북 기조에 맞추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청와대가 국민보다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방부 합동조사는 청와대를 건드리지 못하고 피라미 사냥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청와대가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이번 목선 사건만 속인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가뜩이나 청와대비서실이 내각 꼭대기에 올라앉았다는 ‘청와대 정부’다. 남북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합의 직후 “사실상 불가침 합의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나선 것도 국방장관 아닌 국가안보실장이었다.
9·19 이후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무너졌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축소 지향의 ‘국방개혁 2.0’으로 강원지역과 동해안을 지키는 2개 군단과 3개 사단 해체설이 돌고 있다. 이번 목선 사건으로 청와대를 다시 보고, 무너진 안보를 다시 세울 수 있다면 천운이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