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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그 자리… 불법 흉물천막이 거리의 주인 됐다

입력 | 2019-06-27 03:00:00

청와대앞 인도에 줄줄이 설치… 주민들 길막혀 차도로 걷기도
세종문화회관 주변도 텐트 점령, 외국인 관광객들 눈살 찌푸려
박원순 “조원진 월급 가압류… 공화당 천막 철거비용 받아낼 것”




2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인근 인도에 설치된 한 불법 천막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위쪽 사진). 같은 날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 인도에 세워진 불법 천막 옆으로 외국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인근의 한 인도. 약 50m에 걸쳐 농성 천막 10여 동이 설치돼 있었다. 이 중 한 천막에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진과 함께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 옆으로는 ‘농성 687일 차’라는 표시도 있었다. 이 천막에는 종로구청이 붙인 ‘4차 자진철거 명령’ 계고장이 붙어 있었다. 계고장에 적힌 철거 대상자의 이름은 이 전 의원의 누나로 돼 있었다. 다른 천막에서는 휘발유통과 발전기가 보였다. 가스버너도 있었다. 이런 천막들이 인도를 차지하면서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이 좁아져 차도를 걷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인근을 지나던 주민 조모 씨(37·여)는 “구청에 여러 번 민원을 넣었는데도 들어주지 않아 이제는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이 시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광화문광장에 세운 천막을 25일 새벽 강제 철거했다. 하지만 우리공화당 측은 이날 오후 원래 천막이 있던 자리에 다시 천막을 설치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27일 오후 6시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다시 철거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26일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우리공화당 측에 보냈다. 서울시는 또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와 당 관계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특수상해 등의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고소 고발했다. 25일 새벽 광화문광장 천막을 철거할 때 당 관계자들이 시 공무원들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공화당의 광화문광장 천막 철거에 들어간 비용 2억 원을 끝까지 받아내겠다. 조원진 대표의 월급 가압류를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우리공화당의 불법 천막에 대해 이처럼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시내에는 도로를 불법 점거한 천막들이 곳곳에 있다. 도로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에 장애물을 두는 행위나 도로의 구조, 교통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25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 인도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 등이 세운 천막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천막 뒤편으로는 종이박스 등의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수재나 양(17)은 “천막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빼앗아 가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인근에도 10여 동의 불법 천막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불법 천막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지자체들은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지만 천막 철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철거를 시도하면 하루 종일 항의 전화를 하면서 업무를 방해해 어려움이 많다”며 “현장 단속 공무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나 진보 성향의 단체가 설치한 천막 철거를 시도하면 “왜 저쪽(상대 진영) 천막은 놔두고 우리 천막만 건드리냐”며 거세게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이익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천막 같은 집회 시설물은 최소한으로 설치하거나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을 두고 설치를 허용하는 등 시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