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는 협상 파트너 교체 요구하며 “경고 빈말 아냐” 南에는 “참견하지 마라”…물밑 대화 진행 부인하기도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 2019.06.27. © News1 DB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남북미의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대화를 앞둔 진통이라는 분석과 교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북한은 27일 권정근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담화를 통해 미국과 우리 측을 동시에 비난했다. 엄포와 불만이 섞인 비난 담화였다.
권 국장은 담화에서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김정은)께서 천명하신 바와 같이 조미 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며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해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권 국장은 또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는 최근 북미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북미가 협상 재개를 위한 물밑 대화를 진행 중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돼 공개적 비난까지 나왔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외무성은 전날 대변인 담화에서는 “조미 수뇌분(정상)들이 아무리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애쓴다고 하여도 대조선 적대감이 골수에 찬 정책 작성자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 조미관계 개선도, 조선반도 비핵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라는 비난을 가했는데, 이는 미국 측과의 실무 협상 과정에서 갈등 사안이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권 국장도 이날 담화에서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고 있으며 지속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하면 북한은 최근 진행한 미국과의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지난 2월 하노이 때와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정상이 대화 유지 기조를 표출한 만큼 협상판 자체를 깨진 않되, ‘우리는 급할 것이 없다’라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달리 우리 측에 대한 태도는 조금 더 강경하고 냉랭했다.
권 국장은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어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 듯한 냄새를 피운다”라거나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청와대가 밝힌 “남북 물밑 대화는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정부를 대화의 당사자로 전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다.
북한은 이날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남조선 당국자’로 칭하며 “얼마 전 남조선 당국자가 북유럽을 행각하는 과정에서 북남관계, 조미(북미) 관계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 담당 외무성 당국자가 담화를 통해 우리 측을 겨냥한 비난을 가한 것도 이례적이다. 북한이 그간 선전 매체를 통해 우리 측을 비난한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기도 하다.
정부는 이 같은 북한의 입장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는 않았다. 기존 입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이날 담화에 대해 묻자 “남북, 북미 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번 형식(한미를 동시 비난하는 외무성 담화)이 좀 특이하긴 하다”라며 정부가 관련한 북한의 진의를 추가로 파악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