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스포츠인들이 스포츠혁신위원회 2차 권고(학교스포츠 시스템 혁신안)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안영식 스포츠전문기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가 이강인과의 계약서 바이아웃 조항(Buyout Clause)에 명기한 금액은 8000만 유로(약 1050억 원). 발렌시아는 최소 8000만 유로는 받아야 이강인의 다른 구단 이적을 위한 직접 협상을 허락하겠다는 뜻이다. 바이아웃 조항이 없는 손흥민의 최근 발표된 예상 이적료는 팀 내 4위, 프리미어리그 전체 13위인 7200만 파운드(약 1060억 원)이다.
이런 두 선수의 존재는 반갑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두 선수를 길러 낸 것은 한국 축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강인이 10세의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축구 유학을 간 것은 ‘한국에선 제대로, 맘껏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와중에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이달 초 발표한 학교스포츠 시스템 혁신을 위한 6대 권고로 인해 스포츠계가 뒤숭숭하다. 대한민국국가대표선수협회, 국가대표지도자협의회 등 7개 단체는 혁신위 권고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궐기대회도 예정돼 있다.
전문 스포츠인들이 혁신위 권고 중 특히 반발하는 항목은 ‘주중 대회 개최 금지 및 참가 금지’다. 혁신위는 학생 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초중고 학생 선수 대상 주중 대회의 주말 대회로의 전환을 권고했다. 교육부에는 학기 중 학생 선수의 주중 대회 참가 금지를 요청했다.
이번 혁신위 권고의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어 공허하다. 학교스포츠의 현실과 종목별 특성, 주말 대회 개최 여력 등을 감안하지 못했기에 무책임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에 대해 혁신위는 “권고는 강제력이 없다. 관련 부처와 단체 등이 협의해 결정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신중했어야 했다. ‘아니면 말고’ 식 권고는 불신과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운동 선수는 실전 경험을 쌓아야 기량이 발전한다. 학생 선수의 대회 출전은 일반 학생의 모의고사와 마찬가지다. 자신의 수준과 부족함을 점검하는 소중한 기회다. 주말 대회 출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골프는 최악의 경우 대회 자체를 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초중고 골프대회를 위해 주말에 코스를 내주는 골프장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 학생이 밤새워 공부하는 건 뭐라 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시간만큼 운동하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 선수는 방과 후에만 훈련하고 주말 대회에만 참가해야 한단다. ‘일반 학생 기숙사 존치, 운동부 합숙소 폐지’와 마찬가지로 이중 잣대다. 문제점은 보완책으로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위상이 올라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차후 대응이 관심사다.
올해 초 스포츠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잇달아 불거졌을 때, “이참에 바꿔보자”는 국민적 공감대는 마련됐다. 최근 진천선수촌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대표팀의 성추행 사건 등으로 그 필요성은 더 커졌다. 하지만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손흥민, 이강인은 눈에 띄는 성공 모델이다. 그런데 추천할 만한 성장 모델은 아니다. 이역만리 조기 유학을 떠나야만 운동 선수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게 바람직하지는 않다. 이강인의 경우처럼 온 가족이 해외로 이주하는 다걸기는 모험이다. 드문 성공 케이스를 롤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 학생 선수의 학습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질(質)과 양(量)은 학생 선수의 직업선택권, 행복추구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