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남해독일마을 아래에 있는 어촌에는 동남아시아인 선원 수십 명이 일하고 있다. 필자가 남해 해양문화를 조사하던 어느 날, 열대야를 피해 캔맥주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때 외국인 선원의 통화 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 멸치잡이 어선을 타고 어업조사를 할 때 동승했던 선원이었다. 기다렸다가 맥주를 들고 다가갔다.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밝게 웃었다. 우리는 밤바다를 보며 캔맥주 두 개씩을 마시고 헤어졌다.
그는 쉬는 날은 어김없이 인도네시아인 동료들과 고향 음식을 해 먹으며 그리움을 달랬다. 윗마을 파독 근로자들도 50여 년 전 그랬다고 한다. 필자에게 서독 생활을 이야기해 주던 노인들로부터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음식에 대한 향수는 깊어지더란다. 독일에서는 한국 음식을, 한국에서는 독일 음식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걸로 봐서 혀의 기억은 머리나 가슴의 기억보다 오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직할 곳이 없어서, 형편이 어려워서, 외국에 대한 동경…. 이유는 달랐지만 서독행을 택한 청춘 남녀가 1만8000여 명이었다. 그들이 다시 한국의 남쪽에 있는 섬으로 재이주해 노년을 보내고 있다. 독일마을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서독 생활 초기의 고단한 삶, 그리고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좋은 추억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아랫마을의 외국인 선원들을 떠올렸다. 그들도 고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을 그리워할 수 있을까. 부디 한국은 멋진 나라였다고 가족에게 말할 수 있기를.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