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강인욱 지음/320쪽·1만6000원·흐름출판
각종 문헌에 술을 먹고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들은 남아 있지만 금세 휘발돼 사라지는 알코올의 특성상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하지만 고된 발굴 현장에서 술 한잔으로 피로를 씻어내는 고고학자들은 기어코 인류가 술을 마신 흔적을 찾아낸다.
최근 중국 허난성의 신석기 유적지인 자후에서는 한 토기가 발견됐다. 분석 결과 알코올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쌀에 꿀과 과일을 섞은 발효주의 성분이 발견됐다. 토기의 밀랍에 섞여 있던 맥주효모균이 곡물 속의 전분과 결합한 채 70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대인이 즐겨먹던 막걸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모험이나 알 수 없는 연대기만 잔뜩 나열된 고고학 개론서와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에 조개껍데기를 통해 젓갈의 맛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형체만 남은 석상에서 화려했던 초원 기마민족의 색을 재현해 내는 현장으로 초대한다.
세계 고고학 자료의 절반 이상은 무덤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 이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생 혹은 저세상에서의 행복을 바라며 정성껏 시신을 안치했기 때문이다. 경남 창원시 다호리 지역에서 발견된 2000년 전 변한 사람들의 통나무관이 대표적인 예다. 하늘로 솟는 나무처럼 죽은 자들 역시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순록을 치며 사는 에벤키 사람들은 나무에 관을 매달았다. 나무의 열매처럼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고학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과 음악, 문학 심지어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무심코 지나쳤던 교과서나 박물관 속 유물과 유적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