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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미국 설득해 전술핵 재배치하자”

입력 | 2019-06-30 13:59:00

[제24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북핵과 김정은의 속셈’,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지금 북한은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국 깃발을 다지고 있다. 우리도 자체 핵개발이 어려우면 전술핵 배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6월 24일 ‘북핵과 김정은의 속셈’을 주제로 개최한 제24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전 전 원장은 “비핵화 프로세스를 터널에 비유하면서 입구와 출구를 이야기하는데,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출구가 없는 터널”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주요 내용.

“5막짜리 사기극에서 뭘 기대하는가”

2016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과 9월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그해 9월 미국 ‘뉴욕타임스’에 맥스 피셔의 칼럼이 실렸다. 피셔는 “김정은이 전쟁도 불사하고 미국을 위협해 자신이 미친 것 같은 인상을 주려 했다. 하지만 치밀한 계산에 따라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체제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자 정치 선전의 산물이다. 이를 토대로 대북정책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 피셔의 분석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을 가졌다”며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은 정상회담에 지각하기 일쑤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에서 30분이나 기다리게 했다. 이를 두고 배짱이 있다고도 했다. 내가 보는 김정은은 포악하고 무자비한 인물이다. 권력 획득 과정과 핵 보유 과정을 보면 집요함에 교활함까지 갖췄다. 

많은 사람이 김정은을 파악하는 데 혼선을 보이는 것은 김정은이 한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거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오랜 기간 일관되게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표명해왔다. 2012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그 전문에 ‘북한은 핵보유국’이라고 못 박았다. 1년 뒤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강조하며 ‘선 핵개발, 후 경제개발’을 강조했다. 인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경제개발이 중요하지만 핵무력에 의해 담보돼야만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3년 뒤 4차 핵실험을 마치고 5월 노동당대회에서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2018년 4월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경제개발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자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발에 집중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은의 언행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북이 같은 용어를 써도 다른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 30년 이상 북핵에 천착해온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그 의미가 한국, 미국과 다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 지대화’라는 의미로, 핵을 가진 주한미군을 빼내 핵 없는 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김일성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내용이다. 

북한의 비핵화 외교 협상이 사기극이라는 것은 지난 약 30년간의 협상 과정이 말해준다. 김일성 시대인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과 1993년 북·미 공동성명이 있었지만 김정일 시대가 되니 언제 그랬느냐 싶게 이를 부인하고 나섰다. 김정일 집권 후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 2·13 합의, 10·3 합의가 있었지만 김정일이 사망한 뒤 북한에선 이를 이행하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지난해 6월 트럼프와 싱가포르에서 공동선언을 했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이 또한 잊힌다. 연극에 비유하자면 김정은이 트럼프와 3차 정상회담을 하거나 문재인 대통령과 다시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비핵화 사기극 5막’이다. 트럼프가 물러나면 5막 연극은 끝나고 6막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연극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은 우리 국민이다. 무대 앞에서 국민은 웃고 울고 박수치고 놀라는 등 갖가지 감정을 다 갖게 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 믿고 연극을 관전하고 있지만 장막 뒤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단순하고 자명한 이치다. 자체 핵개발이 어려우면 미국이 가진 전술핵을 배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북한에 줘야 하는 보따리가 커진다. 전술핵 배치 이야기를 하면 미국을 잘 안다는 그룹에서 “미국이 허용하겠는가”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익을 위해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전술핵을 들여오는 것은 새로 핵을 개발해 보유하는 것이 아닌 한 비확산체제와 관계없다.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비확산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

북한의 비핵화는 출구 없는 터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미국도 아시아·태평양 동맹국이 요청하면 전술핵 자산을 재배치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공식 문건에 적시해놨다. 미국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인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독일, 터키 5개국에 전술핵 180개를 분산 배치하고 있다. 전술핵 공유는 유럽보다 한국이 더 급하다. 한미동맹 차원에서 핵우산이 작동하고 이를 통해 북한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국민이 안심하게 되고, 우리 군이 북한 핵에 과민하게 반응해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많은 이가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터널에 비유하면서 입구와 출구를 이야기한다. 북한도 충분히 비핵화 입구까지는 갈 수 있다. 문제는 나갈 의지가 없다는 데 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출구가 없는 터널이다. 

문 대통령이 스웨덴에서 남북한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닌 대화라고 했지만, 지난 30년간의 대화를 점검해봐야 한다. 냉전시기 ‘봉쇄 정책’을 주창한 미국 조지 캐넌은 “강력한 군사력이 아름답고 우아한 외교를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도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뜻이다. 

남북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한 측 주장이 많이 반영된 것은 당시 북한이 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강할 때는 우리 힘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만, 우리가 흐트러지고 유약하면 말려들어간다. 군사적 무방비 상태에서 비핵화 대화에만 매달리면 호랑이 잡으러 들어갔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형국만 초래할 것이다.

윤융근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기자 yunyk@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5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