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텔레콤 팀 회트게스 회장
유럽 최대 통신사인 도이치텔레콤의 팀 회트게스 회장은 지난달 27일 “한국의 5G 실현 속도가 부럽다. 독일에선 안테나 하나 세우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이치텔레콤 제공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회장(57·CEO)이 태블릿 PC를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서울 시내 음식점 바로 뒤의 한 빌딩 옥상에 5G 안테나가 잔뜩 들어선 사진으로 이번에 와서 찍었다고 했다. “독일에선 바로 앞 음식점의 민원, 규제와 행정처리 때문에 심하면 기지국 한 대 짓는데 2, 3년이 걸리기도 한다. 음식점 바로 옆에 이렇게 많은 안테나가 들어선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회트게스 회장은 말했다.
○ “한국 5G 실현 속도, 독일선 어려울 것”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난 회트게스 회장은 나흘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도이치텔레콤은 유럽 최대 통신사이자 50여 개국 통신 산업에 진출해 있는 연매출 7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통신사업자다. 산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회트게스 회장을 비롯한 60여 명 임직원들이 격년으로 글로벌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3회 차인 올핸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이룬 한국을 찾았다.
회트게스 회장은 독일의 에너지기업 VIAG 그룹을 거쳐 2000년 도이치텔레콤에 합류했고 2014년 1월부터 회장 직을 맡고 있다. 한국에는 2004년 처음 방문한 이래 매년 방한한 ‘친한파’다.
SK텔레콤과는 2016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회트게스 회장은 “그때 SK텔레콤 부스가 우리 부스 바로 옆에 있었는데 인공지능(AI)·펫 서비스·첨단지도 시스템 등 내가 갖고 싶었던 게 거기에 다 있었다. ‘여기 대표가 누구냐’고 물어 당시 SKT사장을 만났다”고 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독일 시장에 들고 간 사람도 그다. “JY(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DJ(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와도 오랜 시간 교류했다”는 회트게스 회장은 이번 방한 길에도 이 부회장과 만나 5G 협력안 등을 이야기했다.
○ “통신사는 손잡고 함께 글로벌로 나서야”
회트게스 회장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만나 ‘글로벌 통신사’로 변신하기 위해 협력하자고 약속했다. 그는 “삼성 애플 구글 페이스북은 글로벌 기업이지만 세계 통신사들은 아직 지역 기반에 머물러 있다”며 “우리가 글로벌로 나아가기 위해선 파트너와 함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과 합의한 5G 협력 방안은 세 가지다. △실내 커버리지 등 5G 관련 기술 개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및 스트리밍 산업 기반 공동 투자 △아시아 5G 스타트업 발굴 등이다. 연내 기술개발 합작회사를 설립한다. 또 도이치텔레콤의 벤처투자 자회사인 DTCP는 서울에 사무소를 내 아시아 지역의 5G 유니콘 기업을 공동 발굴·육성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 경제 또한 중공업이나 화학 등 대기업 위주의 구조로 발전해 왔다.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서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 선두그룹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의성은 작은 조직에서 나온다. 스타트업이 창의성을 잉태하면, 대기업은 이를 시장에서 키워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DTCP를 통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 각지에서 신산업 기업에 투자하고 해외 인재들을 영입해오는 이유다.
도이치텔레콤은 유럽 시장에서 5G 경쟁을 앞두고 있다. 이달 독일 5G 주파수 경매에서 66억 유로(약 8조7000억 원)를 들여 가장 많은 블록을 차지했다. 회트게스 회장은 “우린 아직 사업이 기업간 거래(B2B)가 중심이다. 한국은 다르다. 소비자를 위한 5G 서비스들을 배워가고 싶다. e스포츠 시장에도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