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000만 돌파 앞둔 영화 ‘기생충’ 세대-계층 넘어 예상 밖 신드롬… 佛 “대중적으로 성공할 칸 수상작” NYT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전망” 한국적 디테일에 높은 완성도 관객들 자발적 “스포일러 자제”… “다양한 영화적 시도 마중물 되길”
‘기생충‘은 코믹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맛‘을 잘 살린 영화다. 피자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에 온 가족이 나섰지만 피자가게 점주는 "넷 중 하나는 불량인 거지"라며 기택(송강호)네를 타박한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신규진 문화부 기자
영화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제작사인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51)는 관객 500만 명, 잘해야 700만 명을 예상했다고 한다. 극장가 비수기로 불리는 5월,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던 2011년 ‘써니’(745만 명)를 기준점으로 삼은 탓이다. 하지만 5월 26일(한국 시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평가나 흥행 면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달 29일 기준 국내 관객 940만 명을 돌파한 ‘기생충’은 이르면 이번 주 ‘괴물’(2006년)에 이어 봉준호 감독(50)의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예술적 면에서 대중적인 ‘기생충’의 기록들
실제로 봉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정해 놓고 작품에 들어가지 않는다. 두 부분을 나눠 저울질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생충’을 ‘피아노’(1993년)나 ‘펄프픽션’(1994년), ‘어둠 속의 댄서’(2000년)와 비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역시나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지난달 5일(현지 시간) 프랑스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18일 만에 관객 68만 명을 돌파하면서 봉 감독의 이전 작품인 ‘설국열차’(2013년)가 갖고 있던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기록을 넘어섰다. 심지어 지난달 17일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쾌거도 이뤘다. 상영관도 180여 개에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현지 언론은 “‘펄프픽션’ 이후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중”(프랑스퀼튀르), “가족영화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특유의 다양한 천재성을 발휘한다”(르몽드) 등 호평을 쏟아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각국에서 개봉이 이어지며 ‘기생충’ 열풍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칸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192개국에 팔린 ‘기생충’은 이후 10개국에 추가로 판매됐다. 세계 202개국 판매는 역대 한국 영화 1위 기록이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넘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도 들 수 있다”(뉴욕타임스)는 예상까지 나올 정도다. 향후 각종 영화제에서 ‘상복’을 누릴 일만 남았다.
○ 공감하고 논쟁하는, 관객들의 영화 곱씹기
특히 ‘기생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영화 속 장치에 대한 해석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점이 눈에 띈다. 20, 30대는 기우(최우식)의 팍팍한 삶에서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청년 실업에 공감했다. 40, 50대는 기택을 통해 가장의 무게감을 떠올렸다. “변기가 높은 곳에 위치한 반지하의 디테일을 정확하게 구현했다” “대중교통을 탈 때 정말 ‘냄새’를 맡아봤다” 등 소소한 경험을 털어놓거나, 박 사장과 연교(조여정)의 애정행위 등을 언급하며 15세 관람가인 ‘기생충’의 관람 등급을 문제 삼는 냉철한 지적도 있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소위 ‘킬링타임’용 영화와 다르게 관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새 문화를 만든 셈이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재관람률이 4.9%에 이르는 ‘N차 관람’ 열풍이 이어졌다. 영화를 3번 봤다는 김종민 씨(42)는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처음 볼 땐 재미를, 두세 번째엔 슬픔과 공포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그 와중에 “스토리 전개를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던 개봉 전 봉 감독의 이례적인 요청을 관객들도 이해한 것일까. 관객들이 앞장서서 스포일러를 거부하는 ‘자발적 마케팅’도 잇따랐다. 오죽하면 프랑스에선 박 사장이 아내 연교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에다 “Si tu me spoiles la fin, je te tue!”(스포일러하면, 널 죽여버리겠어)라는 문구를 달아 포스터를 제작했으니 말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봐야 충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관객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순기능적인 마케팅 효과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봉 감독도 지난달 23일 800만 명 돌파 기념 GV(관객과의 만남) 행사에서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봉 감독은 “우리만 유별난 건 아니다”라고 겸양했지만, ‘기생충’은 모든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 52시간을 준수한 ‘좋은 영화 만들기’의 표본이 됐다. 첫 표준근로계약 사례가 아닌데도 조명을 받은 건 그간 우리 사회가 영화 제작진의 처우에 무관심했다는 증거다. 60여 회 차 사이즈였지만 제작비 상승을 감수한 제작사의 ‘통 큰’ 배려로 77회 차에 촬영을 마쳤다. 폭염에 아역배우가 뛰노는 장면을 촬영할 수 없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한 건 이미 유명한 얘기가 됐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년)을 시작으로 표준근로계약이 정착돼 온 영화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방송계가 반응한 건 칸의 위력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만들었고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출범해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미약하지만 ‘선한 영향력’이 문화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물론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을 맺은 작품 비율은 2015년 36.3%에서 지난해 77.8%로 늘었지만 10억 원 이하 저예산 독립영화 등은 집계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대형 투자사가 없는 영화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대로 영화를 만들기 버겁다”는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의 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앞으로가 중요하다. ‘포스트 봉준호’ 양성을 위해선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용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의 다양성이 감소되고 흥행 공식을 답습한 유사 영화들이 재생산될 때마다 ‘한국 영화의 위기설’이 흘러나왔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의미다. 곽 대표도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 젊은 감독들의 다양한 영화적 시도가 많았던 2003년을 떠올리며 “‘기생충’이 이런 분위기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만드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흥행에 대한 부담으로 도전을 주저하게 된 업계 분위기가 유망한 감독의 창의성을 억압하진 않는지 반성해 볼 때다.
신규진 문화부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