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판문점 정상회담]하노이 때보다 길었던 53분 회담
트럼프, 北측으로 갔다가 김정은과 함께 다시 南측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안내로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가(왼쪽 사진) 다시 김 위원장과 함께 남측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 대통령은 “선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honour)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4개월여 만에 만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데서 각하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판문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30일 오후 3시 58분경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사상 첫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했던 ‘2분간의 짧은 만남’을 훨씬 뛰어넘어 53분간 이뤄진 이날 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2, 3주 내에 실무협상을 갖기로 합의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면서 워싱턴 4차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열어 놨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 이후 처음 마주한 북-미 정상의 메시지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북-미 적대관계 청산을 앞세우며 체제 안전보장 등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우회적으로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는 계속되고 있다(stay on)”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 트럼프에게 적대관계 청산 강조한 김정은
김 위원장은 이날 여러 차례 ‘과거 청산’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땅을 밟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라며 “좋지 않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남다른 용단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트럼프) 각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훌륭한 사이가 아니었다면 하루 만에 이런 상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톱다운(Top-down) 대화를 통해 이견을 풀어가자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라며 “우리가 이뤄낸 관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나큰 의미를 가져다 준다”고 화답했다.
○ 트럼프 “대북제재는 유지될 것”
회담을 마친 뒤 김 위원장을 환송한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각각 실무협상단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사안들에 대한 해결을 시도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주도 아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팀장을 맡아 2, 3주 안에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는 목표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포괄적(comprehensive)이고 좋은 합의(good deal)에 이를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합의, 다시 말해 ‘빅딜’에 준하는 큰 틀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는 유지되느냐’는 질문에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시점엔 제재가 해제되기를 기대한다”면서도 “하지만 제재는 그대로 남는다. 협상이 계속돼 뭔가 일어나면 그때가 제재에 대해 얘기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