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對韓수출 규제’ 경제보복]日, 화학물질 3종 ‘수출 심사’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이 3개 품목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매번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며 3개 품목과 관련된 제조기술을 이전하거나 제조설비를 수출할 때도 허가가 필요하다. 정부 허가에는 약 90일이 걸릴 뿐만 아니라 아예 ‘불허’할 수도 있다.
1일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우려했던 일이 현실화되자 하루 종일 혼란 속에 우왕좌왕했다. 당장 규제에 들어가는 3개 품목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한국의 핵심 수출품을 직접 겨냥한 조치라 장기화될 경우 한국 주력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다가 수출 규제 품목의 범위도 불명확해 기업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부품 등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액상 형태의 폴리이미드 원료를 일본이 90% 독점하고 있지만 각기 다른 공정을 거쳐 가공해 납품된다. 폴리이미드에 플루오린(fluorine·불소) 처리를 하면 열에 강한 성질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된다. 국내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수출을 규제하겠다는 폴리이미드가 원료 형태인지, 가공 형태인지 등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며 “해외 공장에서 일본 원재료를 받아 가공하는 것까지 수출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등이 불명확해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투명 폴리이미드의 재료다. 만일 투명 폴리이미드도 수출 규제에 포함되면 ‘갤럭시 폴드’ 등 최신 모바일 기기의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원재료인 에칭가스와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이미 시장의 70∼9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두 품목도 고성능 제품은 대부분 일본산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도 에칭가스 생산은 가능한데 일본산에 비해 순도가 떨어져 완제품의 품질 또는 수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미 주요 생산설비가 일본산 에칭가스 사용에 최적화돼 있어 대체물질을 찾더라도 세팅부터 다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웨이퍼 위의 실리콘에 미세한 패턴을 그리는 데 쓰이는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 역시 미세 공정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산을 주로 쓴다.
일본 기업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날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도쿄오카공업 홍보담당은 “화웨이에 대한 제재가 완화돼 안심했는데 (한국 수출 규제 강화로) 낙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고 있다. 에칭가스를 생산하는 모리타(森田)화학공업도 “사전 서류 제출 등이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실제 수출 규제를 하면 일본 원료 수출업체가 먼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에 경제 보복할 수 있는 품목이 적고, 주요 소재 부품의 국산화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국의 타격이 훨씬 크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이슈가 양국 간 외교 갈등에서 비롯된 만큼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