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궤도 오른 비핵화 협상]
미국이 북한에 하노이에서 요구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파악된다. △‘비핵화 로드맵’ 필요성에 대한 합의 △공동의 비핵화 정의 도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동결이 그것이다. 그만큼 이달 중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 실무회담에서도 미국의 이 같은 ‘포괄적 합의’에 대한 요구사항이 큰 틀에서 변화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차 회담을 마친 직후 “포괄적인 좋은 거래(comprehensive good deal)를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회담을 마친 북한 역시 ‘영변 핵시설 폐기’와 핵심적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5개를 맞바꾸자는 ‘스몰딜’ 기조를 완화하고 있다는 낌새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포괄적’ 접근법과 북한이 원하는 ‘스몰딜’의 간극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실제로 협상 테이블에 나서야 하는 북-미 당국자들은 사실상 ‘하노이 결렬’ 직후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에 5개의 핵시설이 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 중 ‘1, 2개’만을 폐쇄하기를 원해 협상이 결렬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생각이 이번 3차 회담에서 ‘포괄적인 좋은 거래’라는 표현으로 재차 강조된 것이다. 결국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의 관건은 북한이 얼마나 미국의 요구 수준에 맞는 핵시설 및 무기를 내놓겠다는 의지를 보이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동시적·병행적 해법’이란 표현을 강조하며 전체 비핵화 로드맵을 그릴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제재 해제의 시점을 비교적 유연하게 다룰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과 관련해 이번 3차 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을 유연하게 바꾸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워낙 양측의 이견이 큰 사안이다 보니 이번 회담에서 ‘비핵화’라는 주제는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되는 것.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한국을 떠나기 전 경기 평택 오산공군기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비핵화와 관련된 공동의 합의에 이른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북한의 근본적인 전략 수정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징후“라고 분석했다.
○ 北 ‘실무회담 진정성’ 두고 회의론
회담이 열린 다음 날인 1일 조선중앙통신이 북-미 정상이 만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통신은 이날 “(북-미 정상은)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 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하셨다”라고 보도했다. 북한뿐 아니라 미국의 핵우산 제거와 주한미군 철수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 것으로 해석되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미가 공유하고 있는 ‘완전한 비핵화’의 정의에 쉽사리 동의할 수 없다는 의중을 재차 내비친 것이다.
한기재 record@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