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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여고생 벼랑끝 내몬 ‘온라인 집단 따돌림’

입력 | 2019-07-02 03:00:00

익명 SNS에서 만난 여학생들, 사소한 말다툼 끝에 집단 공격
실명-학교 알아내 40분간 협박… 피해학생 2시간뒤 극단 선택
가해학생들 자살소식 듣고도 “주제 모르고 까불어” 막말
“단톡 나가라” 앱-대화방도 삭제




“병×이 주제 모르고 까불어놓고 자살하고 난리냐.” “수사하라 해ㅋㅋㅋ. (경찰에서) 연기해. 울면서 말해야 돼.”

지난해 7월 12일 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재판 별거 아님. 우리 채팅 다 나가고 자자ㅋㅋ”라는 메시지도 올랐다.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건 여고생들이었다. 하루 전인 7월 11일 새벽 16세 김주은(가명) 양은 인천 계양구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했다. 익명의 또래 여학생들로부터 ‘사이버불링(Cyberbullying)’을 당한 직후였다. 사이버불링은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주은이의 죽음으로 이어진 사건은 서로 모르는 청소년 10여 명이 모인 익명의 카카오스토리 채널에서 시작됐다. 채널 참여자들 사이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을 놓고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싸움을 시작한 A가 나가버리자 A 편을 들었던 주은이를 4명의 여학생이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이들은 주은이의 실명과 학교 등 신상정보를 알아낸 뒤 “10분 단위로 네 사진을 하나씩 풀겠다”며 위협했다. 그러고는 7월 10일 오후 9시 39분부터 40분간 주은이의 페이스북에 게시된 사진을 가져와 공개된 댓글 창에 7차례나 띄우고 욕을 퍼부었다. “네 학교에 전화를 걸겠다” “찾아가서 죽을 때까지 패겠다”는 말도 했다. 주은이는 “내가 잘못한 게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학생들은 “A가 네 친구면 너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로부터 약 2시간 뒤인 7월 11일 0시 40분 주은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20층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담겼다. 주은이는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진짜 멘탈 그렇게 약한 애 처음 본다.” “빨간색 드레스 입고 장례식장 가고 싶다.” 가해 학생들은 주은이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에도 막말을 멈추지 않았다. “말 맞춰.” “우리 경찰에 걸리면 주은이가 먼저 욕했다고 말하자.” 이들은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경찰 조사에 대비해 말을 맞추기도 했다.

주은이의 부모는 딸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7월 12일 오후 11시경 장례식장에서야 전말을 알게 됐다. 주은이의 학교 선배 B가 가해 학생 중 한 명인 C를 장례식장에 데려와 사정을 설명하게 했다. C는 80여 장의 대화 캡처 사진을 주은이 부모에게 건넸다. 부모는 이 대화 내용을 경찰에 넘겼다. 인천 계양경찰서는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가해 학생 4명 중 2명만 입건해 7월 말에 검찰로 넘겼다. 혐의는 모욕죄였다. 하지만 주은이의 부모는 경찰이 입건한 2명에 대해 강요 미수, 협박, 자살방조,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해 8월 검찰에 고소했다. 9월에는 나머지 두 학생도 고소했다. 3명은 모욕과 강요 미수, 나머지 1명은 모욕과 협박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 1명은 지난달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징역 장기 3년에 단기 2년형이 구형됐다.

하지만 부모가 C로부터 전해 받아 제출한 대화 내용 외에 다른 증거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수집되지 않았다. 주은이의 휴대전화는 암호가 걸려 있어 풀지 못했다.

가해학생들의 휴대전화는 사건 발생 시점에서 석 달이 지난 10월 15일 뒤늦게 압수됐다. 이미 채널은 삭제되고 대화방이 없어진 뒤였다. 주은이가 사망 직전 2시간 동안 가해 학생들과 나눈 대화는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다.

한성희 기자 che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