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22일 제3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천안함 46용사 유족이 묘역 앞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동아일보DB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챈스 펠프스 일병(1984∼2004)의 유해를 고향까지 운구한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조국과 위국헌신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과 남은 가족을 어떻게 예우하는지가 바로 국격(國格)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달 현충일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행사는 형식과 내용에서 국격을 의심케 한다. 천안함 폭침과 제2연평해전의 희생장병 유족들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이 들어간 홍보물을 오찬 테이블에 버젓이 들이민 것은 비례(非禮)를 넘어 ‘정신적 위해’를 가한 것과 다름없다. 북한의 도발로 하루아침에 남편과 자식, 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숨이 턱 막히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일부 유족들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고 분개했다고 한다.
군 수뇌부의 애매한 태도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3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한의 3대 도발(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제2연평해전)을 ‘불미스러운 남북 간 충돌’로 규정해 논란을 자초했다. 뒤늦게 ‘북한의 도발로 인한 충돌’이라고 정정했지만 유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는 원성을 피할 수 없었다. 국방수장이 정부의 대북 유화 기조를 의식해 사실상 북한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빈축도 샀다.
국방부는 지난해 평양 정상회담 때 남북이 체결한 9·19 군사합의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크게 기여했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그러나 합의 체결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 사과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더 이상 불미스러운 과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구축에 대해 논의했다”고 답변한 것이 전부다.
지난해 6월 판문점의 장성급 군사회담 이후 남북 군 당국간 공식·비공식 대화에서 북한의 도발 사과 문제는 철저하게 ‘논외’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결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남북합의의 대원칙이라면 도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북한에 응당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미 국방부가 지난달에 발간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 북한을 역내 안보위협국으로 규정하면서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주요 사례로 적시한 것도 과거 도발의 사과 없이는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 정부의 국정기조인 적폐청산은 잘못된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 근본취지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중단 없는 적폐청산을 강조하는 정부가 유독 북한의 ‘도발적폐’ 청산엔 소극적인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로 얼룩진 불행한 과거를 그냥 덮은 채 정상이 만나서 화해 평화를 외쳐본들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더 늦기 전에 북한에 도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후속 조치를 약속받는 것이 상식이고 순리다. 그것은 한반도 평화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국가를 위해 산화한 영웅과 유족들을 제대로 예우하는 길이기도 하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