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씨랜드 참사 추모비 앞에 모인 유족들. 송파구 제공
김소영 사회부 기자
고 이형민 군의 외할머니 안순이 씨(81)가 잘 익은 참외와 바나나, 떡을 형민 군의 영정 앞에 놓으며 말했다. 외손자의 영정을 쓰다듬던 안 씨는 뒤돌아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그러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손자 앞에 섰다. 안 씨는 빳빳한 1만 원짜리 지폐를 영정 옆에 올려둔 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형민 군은 20년 전 ‘씨랜드 참사’로 희생된 19명의 유치원생 중 한 명이다. 지난달 30일 씨랜드 참사 20주기 추모식이 서울 송파구 송파안전체험교육관에서 열렸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경기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4명 등 모두 23명이 숨졌다. 당시 숨진 19명 중 18명의 어린이가 송파구 소망유치원에 다니는 5, 6세 아이들이었다. 추모비에 놓인 사진 속 아이들은 별 모양 왕관을 쓴 채 웃고 있었다. 국화를 들고 덤덤하게 헌화 순서를 기다리던 유족들은 사진 속 아이들과 눈을 마주친 뒤에는 모두 흐느꼈다.
유족들은 사고 발생 다음 해 1억5000만 원의 기금을 마련해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웠다. 대표는 쌍둥이 자매를 떠나보낸 고석 씨(56)가 맡았다. 고 씨는 송파안전체험교육관을 세워 체험형 안전교육에 힘쓰고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극적인 일이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유족들의 바람과 달리 2014년 세월호 참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등 대형 참사는 반복되고 있다. 유족들은 “매번 사고가 발생하면 머리 숙여 사과만 할 뿐 예방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추모식을 찾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실종자인 허재용 이등항해사의 어머니 이영문 씨(70)는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다 똑같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실종자도 얼른 찾아야 할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참사 이후 20년의 시간이 흘러 당시 30대였던 엄마, 아빠들은 50대 중년이 됐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영원히 유치원생이다. 추모식을 찾은 유족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희생된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입니다.” 아이들이 남긴 숙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김소영 사회부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