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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며 배우는 거야” 도란도란 얘기를[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19-07-02 03:00:00

<80> 갑자기 성적이 떨어진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얼마 전 시험을 본 성적표를 받는 날, 채현이의 얼굴이 어둡다. 어쩐 일인지 성적이 좀 많이 떨어졌다. 엄마는 아이가 성적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됐다. 이웃 엄마들을 만나 이런 불안을 말했더니 걱정해 준답시고 불안을 더 부채질했다. “이를 어째, 중학교 2학년 성적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던데. 정신 바짝 차려야겠네. 그러다 미끄러지면 한순간이야.” “우리 형님네 아들도 그때 갑자기 떨어지더니 헤어나지를 못하더라고.” 채현이 엄마는 더 불안해졌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는 아이가 말 못할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안 좋은가, 친구랑 잘 못 어울리나 등을 걱정한다. 또 어떤 부모는 성적이 떨어진 것을 ‘불성실’로 생각한다.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마치 범인 잡는 형사처럼 찾아내려 한다. 공부를 곧잘 하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실수에 아이 공부 방법 자체를 의심하고 개입하기도 한다. “네가 암기과목을 하는 것을 보니 방법이 잘못됐더라. 너는 외우라고 하면 눈으로만 이렇게 보잖아. 쓰면서 해야지, 그렇게 하면 외워지겠어?”라고 지적한다. 이런 방식은 아이를 화나게 하고 공부를 더 안 하게 만든다. 열심히 했지만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운데, 부모가 “네가 틀렸다”고 하면 반항심이 생겨 부모의 방식을 따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기 방식대로 계속했다가 ‘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생기고 실패가 두려워 아예 공부를 못 하기도 한다.

아이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한두 번의 실패는 대범하게 넘어가는 것이다. 호탕하게 “실패하면서 배우는 거야. 떨어질 때도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의 공부법이나 정서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나쁜 방법은 아니지만, 최대한 예민하게 굴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가 예민하면 아이는 작은 실패를 어떤 습득의 과정으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불편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다. 성적이 떨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불편한 기억이 떠올라 긴장하게 되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부모가 나서서 처리해 주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한발 물러서 자기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와 편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심각하거나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우선 “왜 성적이 떨어졌는지 혹시 생각해 봤니?”라고 묻는다. 아이가 “일단 공부를 좀 안 했고요”라고 말하면 “공부에는 왕도가 없어. 할애한 시간이 적으면 아무래도 그렇지”라고 말해주면 의외로 아이들이 순순히 인정한다.

좀 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눠볼 수도 있다. 아이가 “이번에는 좀 공부를 덜 했어요”라고 말하면 부드럽게 “왜 덜 하게 됐을까?”라고 물어본다. “기말고사는 범위가 좀 넓어서 4주 전부터 해야 했는데 2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라고 대답하면 부모는 “좋은 걸 배웠어. 다음부터는 시간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 되겠네”라고 말해주면 된다. 아이가 “이번엔 유난히 실수가 많았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때는 “너 평소에도 실수를 잘하니?”라고 묻는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면 “그러면 이번에는 왜 실수를 했을까?” 하고 말해주면 아이도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이다. “한번 풀었던 문제와 똑같은 지문이 나와서 신경을 안 쓰고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깐 좀 달랐어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아 그랬구나, 같은 문제라도 똑같이 내면 출제자가 자존심이 좀 상하거든. 그래서 보통 바꿔서들 많이 내. 이번에 좋은 거 배운 거야”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 것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이 자신의 문제다. 부모가 아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럴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