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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최고의 작품 ‘쉬리’

입력 | 2019-07-03 06:57:00

1999년 2월 개봉한 영화 ‘쉬리’는 한국영화 제작시스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사진제공|강제규필름


과감한 총격전 액션…새로운 시도
일본·독일 등 해외 수출 활로 열어
주연 한석규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


분단현실이 만든 비극적 첩보액션 장르에 애절한 사랑의 감성을 녹여 넣은 이야기.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보던 사실적인 총격전 등 액션을 과감히 시도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 1999년 2월13일 개봉한 ‘쉬리’에 대한 설명은 이 외에도 다양하다.

한국영화는 흔히 ‘쉬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영화의 실험과 변주는 계속됐지만 기술력이 집약되고 대자본이 응축된 제작시스템의 변화는 ‘쉬리’를 기점으로 본격화했다. 흥행 성과도 당시로서는 전무후무하다. 전국관객 600만 명(배급사 집계)을 동원, 한국영화 신기록을 쓰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최근 한국영화 첩보액션 장르는 빈번하지만 20년 전 상황은 달랐다. 당시 ‘쉬리’의 반향은 컸다. 이야기는 국가 비밀기관의 특수요원 중원(한석규), 북한의 무영(최민식), 중원과 결혼을 약속한 연인 명현(김윤석)을 축으로 펼쳐진다. 남북 정상의 친선축구 관람을 앞두고 폭탄테러가 예고된 가운데 ‘적과의 사랑’이란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들이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영화의 순 제작비는 23억 원, 마케팅 비용을 더한 총 제작비는 30억 원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편당 제작비 300억 원대 영화까지 기획되지만 당시로서는 ‘쉬리’가 역대 최대 규모였다. 촬영 자체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특히 미국에서 영화용으로 수입한 총기를 활용해 실감나는 전투 액션을 완성했고, 서울 한복판에서 공포탄을 터트려 현장에서 놀란 시민들이 오인해 경찰에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연출자인 강제규 감독은 1996년 ‘은행나무침대’의 성공에 힘입어 ‘쉬리’를 내놓은 직후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기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쉬리’는 그해 4월 역대 최고액(130만 달러·15억 원)으로 일본에 수출됐다. 이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인도 등에 판매돼 한국영화 수출의 활로를 열었다. 주제곡 ‘When I Dream’도 빼놓기 어렵다.

‘쉬리’의 성공은 이후 한국영화의 도전과 확장의 기폭제가 되면서 200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은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도화선이 됐다. 성공의 주역들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한석규와 최민식은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영화 ‘천문’을 올해 가을 공개하고, 강제규 감독은 실화 바탕의 ‘보스턴 1947’을 하정우와 시작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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