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과 2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위상을 드높일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성사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에 이목이 집중되면서 아베의 뜻은 충분히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베 총리가 보인 행보가 눈에 띕니다. 아베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의 정상들과 회담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은 회피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불만을 드러낸 겁니다.
해당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일본 정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허가 신청과 심사에 9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한국 주력 수출 분야인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는 보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롭고 공평하며 무차별적이고 투명한 무역과 투자 환경”이라는 G20 정상회의 공동성명 문구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무역 보복 조치를 취한 아베 총리의 이율배반(二律背反)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부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한국에 화풀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은 전 세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생산량의 90%, 에칭가스는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국은 물론 일본 기업의 타격도 불가피합니다. 일본에 한국은 세계 최대 소재 수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치로 일본 기업도 위축되고 동시에 우리 기업의 일본 탈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나옵니다.
우리로서는 당장 대응 조치가 시급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더불어 대체 물량을 확보하고 현재 재고가 소진되기 전까지 타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입처 다변화와 소재 국산화를 모색해야겠지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