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인사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판문점=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참모들이 심사숙고해 만든 무대 위에서 정치인들은 최종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정교하게 움직인다. 이미지 핸들러 또는 이미지 컨설턴트의 원조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1824년 첫 번째 선거에서 패배하고 두 번째 도전하면서 처음으로 미디어를 활용한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미지 정치의 역사가 200년쯤 된다는 것은 그동안 다양한 대중설득기법들이 정치에 응용되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선전선동의 기법을 사회주의 국가에서 처음 개발했다고 하지만 선거도 돈벌이가 되는 미국에서는 훨씬 다양한 방식의 이미지 연출 기법이 발달했다.
정치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을 접하게 되면, 사진기자는 본질만을 촬영해 독자에게 전달하겠다는 꿈만 꿀 뿐 준비된 세트에 금방 적응한다. 본질을 찾아다니다 ‘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시민 3명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미국으로 돌아오는 귀환 의식이 열렸을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새벽 3시에 공항에 나가 이들을 맞았다. 귀환자들이 내릴 비행기 문 뒤쪽으로는 건설용 크레인 2대가 카메라 앵글을 피해 서 있었다. 대형 성조기를 걸기 위한 장치였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인질들이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CNN을 비롯한 세계 기자들이 생중계했다. 현장 기자들의 역할은 역사를 기록해서 남기는 것일 뿐 역사의 현장이 윤색되거나 포장되어도 걷어낼 수 없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미장센 연출 능력을 한껏 뽐냈다. 6월 22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예술 공연장을 찾은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 모습과 흡사했다. 동원된 10만 명 인민들 눈높이에 무대를 만들고 레드카펫을 깔고 두 정상이 걷는다. ‘병풍’이라고 하는 사진의 배경이 된 인민들은 마치 연예인의 팬이나 트럼프의 지지자들처럼 깃발을 흔들며 환영한다. 예전 같으면 주석단에 앉아 있는 VIP를 보여주고 국기 흔드는 주민들을 따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편집했을 것이다. 무대와 관중석이 한 앵글에 들어오게 배치한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출정식 같은 미장센이었다.
예전에 북한 사진이 미국 등 다른 나라 정치지도자 사진과 다른 점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김정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배경 인물은 뿌옇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 트럼프 사진과 김정은 사진의 차이는 거의 찾을 수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 등장하는 화면을 젊게 변화시키고 있다. 통역과 사진가들은 젊은 사람으로 교체됐다. 현장 퍼포먼스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은 현송월은 음악으로 사람의 감정을 다뤄왔다. 무대 퍼포먼스를 경험한 가수의 감각을 정치와 외교에 활용하는 것도 마케팅 전문가와 심리학자 그리고 무대 연출자들이 동원되는 미국 선거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김정은의 모습은 다른 나라 정치지도자의 사진과 차이가 없다. 이미지를 위해 무한에 가까운 인원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력적이다. 김정은의 이미지는 이제 점점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표현된다.
북한 사진에서 굳이 우리와 다른 부분을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본질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미지만 변한 것은 아닌지, 변화하기 쉬운 이미지만 변하고 본질은 그대로일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하다. 본질적인 남북 평화의 이미지로 바뀌었길 진심으로 바란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김정은.jpg’ 저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