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재외공관에서 무슨 일이
우경임 논설위원
그런데 신남방정책의 최전방 기지인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서 탈이 났다. 외교부와 삼성에서 근무했던 김도현 주베트남 대사와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인 도경환 주말레이시아 대사가 비위에 연루돼 두 달 전 소환됐다. 김 대사는 지난해 10월 현지 기업으로부터 항공권과 숙소를 제공받은 사실이 인정돼 청탁금지법 위반 등으로 최근 해임됐다. 도 대사는 직원에게 폭언을 하고 식자재 구입비를 부풀려 공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으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에 회부됐고 징계위의 결정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아세안 10개국 중 특임대사가 부임했던 2개국 모두 대사가 연루된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다.
‘新남방정책’ 특임대사 2명 좌초
노무현 정부 당시 자주파로 분류돼 동맹파와의 갈등의 중심에 있던 김 전 대사는 지난해 4월 특임대사로 부임했다. 처음에는 코드 인사 논란 속에 불거진 사건이려니 했는데 그가 소환된 이후 베트남 일부 교민 사이에서 그의 구명 운동이 벌어졌다.
―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등 이른바 ‘갑질’ 의혹이 있다.
“다른 부처에서 파견된 주재관들과 갈등이 컸다. 양국 간 외교는 늘 하던 일이다. 현지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고, 교민들의 교육이나 비자 문제 등을 다루려면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3년 쉬러 왔는데 왜 일이 많아지지’라는 불만이 있었다. 재외공관에 파견 나오면 일을 하나, 안 하나 평가는 똑같다는 거다. 사실 인사고과에 영향이 없는 게 맞다. 기업에서 온 입장에서는 ‘이렇게 일을 안 할 수가 있나’ 싶었다. (※그는 2013년부터 삼성전자에서 5년간 근무했다) 일이 진척되지 않다 보니 화를 낸 것도 사실이다.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중징계를 받았는데….
“주재관들 ‘일 많아졌다’며 반발”
○ “교민들 만나면 골치 아프니 만나지 말라고 해”
김 전 대사가 다른 부처 출신 주재관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반면 산자부 출신인 도 대사는 외교부 직원 4, 5명의 집단적인 저항에 부딪혔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7일 도 대사와 통화를 했다.
―외교부 출신들과 불화가 있었다는 건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가자마자 신남방정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한류 열풍을 경제와 연계하고, 할랄푸드 시장에 진출하는 로드맵을 만들어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부 출신들이 ‘안 된다’며 지시 거부를 하더라. 대사관 예산 결재 권한을 외교부 출신인 차석 대사한테 위임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를 거부했더니 갈등이 점점 커졌다. 인사권이 없으니 이런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재외공관이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 “적지에서 집안싸움으로 자멸한다”
두 대사의 해명은 자신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변명하기 위해 조직에 책임을 돌리는 것일 수 있다. 또는 그들의 주장처럼 나태한 조직을 바꿔보려다 반감을 산 상태에서 허물을 잡힌 것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진위는 차차 드러나겠지만 두 대사의 해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립된 왕국’인 재외공관에서 외교관과 주재관 사이 해묵은 갈등이 우리 외교 역량을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전·현직 외교관, 주재관과 통화해 보니 “외교관과 주재관이 그저 한 공간에 머물 뿐, 전혀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 부처에서 파견한 주재관들은 ‘쉬러 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기수나 승진 순서대로 파견을 나오니 긴장감 없이 업무에 임한다. 반면 외교관들은 권위적인 관행, 폐쇄적인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외교관은 주재관을 향해 “남 일 보듯 일한다”고 하고, 주재관은 외교부 출신을 향해 “자기들끼리만 뭉쳐 다닌다”고 하며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국익을 수호하는 최전방이 재외공관인데 집안싸움으로 원팀 대응이 어렵다”고도 했다.
외교관-주재관, 편갈라 집안싸움
주재관은 각 부처에서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공관장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외교 업무의 전문성도 부족한 경우가 없지 않다. 공관장은 인사권이 없는 대신 이들에 대한 지휘 책임 역시 지지 않는다. 기강 해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는 없는 것이다.
특임공관장 자질 검증 강화해야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외교관과 주재관 사이 불신의 벽은 더 높아집니다. 이들 사이 화학작용이 일어나도록 재외공관 개혁이 필요합니다. 적지에서 우리끼리 자멸해서야 되겠어요.” 전직 외교부 출신의 고언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