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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느날 교황청에 아들을 빼앗겼다

입력 | 2019-07-06 03:00:00

◇모르타라 납치사건/데이비드 I. 커처 지음·허형은 옮김/632쪽·1만8500원·문학동네




“혼이 나간 아이 엄마는 눈물범벅이고 아빠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고, 그 집 애들은 죄다 무릎을 꿇고 경찰에게 제발 봐달라며 빌고 있었어요. 어찌나 짠하던지 형용할 말도 못 찾겠더라고요. 심지어 사령관이, 루치디라는 자였는데,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느니 차라리 범죄자 백 명의 체포명령을 이행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어요.”

1858년 6월 25일 이탈리아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이들은 여덟 자녀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더니 여섯 살 아들 에드가르도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간다. 가톨릭 신자인 하녀가 아이의 첫돌 무렵 남몰래 세례를 줬고, 교회법에 따라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아이를 되찾기 위한 모르타라 부부의 사투가 이어진다. 교회법에 따라 게토에 격리돼 살던 유대인 공동체는, 제 아이를 잃은 듯 격분해 모르타라를 돕는다. 명문 유대인 가문을 통해 읍소하고, 세례를 줬다는 하녀를 찾아 사실을 추궁하고, 종교재판관실 문을 두드리고…. 하지만 처절한 노력에도 교황청은 완고했다. 에드가르도는 부모와 떨어져 교황 피우스 9세의 특별 감독하에 가톨릭 교육을 받는다.

종교재판이 서슬 퍼렇던 시절. 이탈리아 유대인에게 모르타라 가족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속으로 분노하면서도 통치자의 역린을 건드릴까 봐 큰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도자 긴급회의를 열고, 비슷한 사건을 겪은 이들의 증언을 모으며 물밑에서 대항할 힘을 다졌다. 이 사건으로 볼로냐 사회는 빠르게 양분됐다.

“서로 다른 두 현실의 충돌은 서로 다른 두 서사,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유대인 동족뿐 아니라 교회의 세속통치에 반대하는 기타 세력들이 받아들인 유대인의 서사는 교황 지배하의 광신이 무너뜨린 화목한 가정의 일화를 묘사하고 있었다. …(교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구원의 일화, 그대까지 타락한 삶과 영원한 지옥의 내세가 예정된 소년을 하느님이 친히 구원하셨다는 감동의 일화로 둔갑했다.”

납치 사건 이후 몇 주가 지나 소규모 유대인들이 조직한 운동은 이탈리아 반도 밖까지 알려졌다. 당시 국제 정세는 격변 중이었다. 각지의 다양한 세력이 교황권에 도전했고, 여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가세해 교황의 세속지배에 균열을 냈다. 축적된 변화의 에너지는 국제적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서히 교황권이 무너지고 종교재판관에 대한 고발이 진행된다. 지난한 재판을 거치지만 관련자들은 혐의를 벗고 풀려났고, 에드가르도는 피우스 9세를 ‘다른 아버지’라 부르며 학업을 이어간다. 교황은 그를 ‘꼬마 개종자’라 부르며 뿌듯하게 여겼다. 훗날 신부가 된 에드가르도의 모습을 당시 한 지역신문은 “적지 않은 유대인도 이 걸출한 설교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고 묘사했다.

유대인 가족의 분투로 이탈리아가 근대를 맞았을까. 비극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사건, 역사적 인물, 변화의 시기를 대서사시로 엮은 논픽션이다. 2015년 전기·자서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한 역사학자가 썼다. 사건 자체가 극적인 데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솜씨 좋게 묘사해 빠르게 읽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마크 라일런스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