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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와 장영자[횡설수설/송평인]

입력 | 2019-07-06 03:00:00


사망자 츠카이 콘스탄틴, 사망장소 에콰도르 ○○병원, 사망일시 2018년 12월 1일, 특이사항 연고자 없음…. 카자흐스탄에서 만든 가짜 신분이었기에 공식적으로는 연고자는 없었다. 하나 실제로는 아들 정한근 씨가 임종을 지켰다. 한근 씨는 입관 당시 아버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검찰에 제출했다. 시신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는 일은 드물지만 그 사진은 그의 죽음을 애도가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서 신문에 실려야 했다.

▷정 씨는 에콰도르에서 1997년 한보 사태 당시 이미 도피한 아들 한근 씨와 함께 유전사업을 벌이고 생일파티 사진까지 남기는 등 꽤 안락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95세의 장수를 누렸다니 그가 특별히 건강한 것인지, 검찰이 쫓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때 재계 서열 14위 그룹을 이끌었던 사람이 84세의 나이에 해외로 도피해 언제 붙잡혀 송환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보낸 11년은 그 자체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을 것이다.

▷정 씨의 입관 당시 모습이 신문에 실린 날 1980년대 2000억 원대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됐던 장영자 씨가 다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도 실렸다. 장 씨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11년, 1994년에서 1998년까지 4년, 2001년에서 2015년까지 14년 등 29년을 사기죄로 감옥에서 보냈다. 지난해 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징역 4년이 확정된다면 2022년까지 총 33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숙대 메이퀸을 지낼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고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 씨와 함께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행세했던 장 씨가 처음 옥살이를 할 때의 나이가 38세였다. 어느덧 75세가 됐다. 한때 ‘대도(大盜)’로 불렸던 조세형이 늙어서도 좀도둑질을 계속하며 도둑질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듯이 장 씨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사기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그녀의 진짜 불행인 듯하다.

▷정 씨의 뇌물은 통이 컸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은 것에 놀랐다고 한다. 불법으로 쌓아올린 한보그룹이란 성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향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장 씨가 ‘큰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안이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의 사돈 집안이라는 배경도 있었다. 돈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던 두 사람의 노년이 한마디로 탐욕무상(貪慾無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