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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럴 수도 있지[내가 만난 名문장]

입력 | 2019-07-08 03:00:00


구선아 책방연희 대표·작가

“내 판단을 넘어서는 존재를 거부하지도, 빠져서 허우적대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고 싶네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도 약하지도 위대하지도 쓸모없지도 않으니까요.” ―키키 키린, ‘키키 키린: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대하지도 심술궂지도 않다. 그러나 가끔 나의 의지나 선택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일이 종종 있다. 지구 반대편 나비 날갯짓이 나에게 와 닿는 그런 일, 오래전 누군가의 선택이 돌고 돌아 나에게 온 것만 같은 일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생기는 어떠한 일이 신의 심술이나 운명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 조금 먼저 도착했거나,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 나에게도 생겼거나, 결국 내가 선택하게 될 일이었거나, 조금 운이 나빴거나 혹은 운이 좋은 날이었거나.

그럴 때면 나는 그냥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오늘을 살려고 노력한다. 예기치 못한 파도에 덜컥 올라탔다고 그를 거부하거나 뛰어내릴 순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바람을 타고 과감히 파도를 즐기는 수밖에. 빠져서 허우적대기엔 나의 오늘은 파도에 부딪치는 저 햇빛만큼이나 눈부시니까. 나는 누구보다 강하지 않지만 약하지도, 그렇게 위대하지 않지만 쓸모없지도 않다. 어제와 다른 파도에 올라도 조금 더 단단하게 나아갈 뿐이다.

우리의 선택과 결과에 조금만 자연스러워지자. 자연스러워진다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재밌어질지 모른다. 생각보다 세상은 심술궂지만 가끔은 관대하기도 하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키키 키린의 또 다른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요.”

구선아 책방연희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