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김영삼(YS) 대통령과의 첫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다가 심근경색에 심장 쇼크가 겹쳐 사망했다는 게 공식 발표였다. 김일성은 YS의 평양 방문 후 자신이 서울을 답방할 경우에 대비해 “백두산의 김일성이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연설 원고까지 써놓았다. 이 자필 원고는 금수산태양궁전에 공개 전시되기도 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실패한 3차 7개년 계획을 대체할 새 계획은 엄두도 못 냈고 200만∼300만 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이 닥쳤다. 북한은 100년 만의 장마 등 자연재해가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김씨 왕조 체제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는 분석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북한에선 “김일성 때는 그나마 먹고살았다”는 소리가 나온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첫 3년간 유훈통치에 의존해 권력 기반을 다졌다. 손자 김정은도 김일성 흉내 내기를 자주 한다. 작년 8월 김정은이 반팔 속옷 차림으로 현지 시찰을 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김일성도 속옷 차림 현지 지도 모습을 자주 노출시켰었다. 김정은이 손바닥을 엇갈리게 해서 박수를 치거나, 옆머리를 짧게 친 모습 등도 김일성 향수를 자극한다. 소련의 위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해 6·25를 일으킨 전쟁범죄 책임자지만 워낙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린 결과 여전히 김일성 후광이 먹혀드는 것이다.
▷김정은이 김일성 사망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것은 2014년 20주기 행사 때뿐이다. 정주년(0이나 5로 꺾어지는 해)에는 행사 규모가 커지는 만큼 이번 25주기엔 김정은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노이 회담 실패로 체면을 구긴 김정은으로선 조부의 아우라가 절실할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