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 파문]
○ 홀로 일본 입국한 이재용 부회장
재계에서는 그만큼 미묘하고 시급한 상황이라 이 부회장이 극도로 말을 아끼며 조용히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국가 간 외교 문제에 기업이 낀 상태라 사태의 심각성, 향후 대응 방침 등 모든 것이 기밀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일본 출장행을 택해 일본 고객사와 소재 부품사 등을 찾아 당장 시급한 과제인 소재 확보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달 들어 일본의 수출 규제가 공식화되자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반도체 사업 경영진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사태 해결책을 논의해 왔다. 4일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머물던 서울 종로구 한 호텔을 직접 찾아가 손 회장의 차량을 타고 30여 분 이상 이동하면서 긴밀히 일본 제재 사태에 대한 조언 등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이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이 참석한 만찬은 예상보다 1시간 이상 길어진 2시간 30여 분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손 회장은 만찬 이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그것(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 “삼성 시스템반도체 1위 계획 정밀타격”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주요 공정인 노광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다. 노광 공정은 빛을 이용해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그려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7나노 이하 초미세 시스템반도체 공정을 위해 극자외선(EUV) 공정을 개발한 상태다. 대만 TSMC 역시 7나노 공정에 성공하는 등 양사가 시스템반도체 초미세공정을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삼성전자의 EUV 공정에 들어가는 포토레지스트도 수출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EUV 공정 수준에 들어가는 포토레지스트는 100%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은 “대만 TSMC는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서 새로운 패턴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개발하는데, 삼성전자는 생산도 어렵게 되면 당연히 격차가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재계 “최악의 시나리오 점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6일 일본으로 출국한 상태다. 지난달 26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참석차 일본을 다녀온 지 열흘 만에 다시 간 것이다. 일본에선 6월에 주주총회가 열리고 7월에 금융투자설명회가 진행되기 때문에 신 회장은 주로 일본 금융업계 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출장길에 일본의 제재가 장기화될지, 금융계로 확대될지 등 동향 파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특히 최근 석유화학 부문에 집중 투자를 시작해 일본 제재가 확대될 경우 입을 손실 등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포함한 경제 보복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 기업마다 ‘최악의 시나리오’ 점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지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