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 파문]
일본 정부가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을 수출 규제 대상으로 정조준한 가운데 올 상반기(1∼6월) 11개 분야의 소재부품 산업 중 9개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무역수지 적자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19년 동안 소재부품 산업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 이익은 일본에 빼앗겨 버리는 ‘가마우지형 경제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정부가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자부품서 대일 적자 가장 커
일본이 ‘포괄적 수출허가제도’에서 제외시킨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포함된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분야의 경우 상반기 한국은 일본에 11억3200만 달러를 수출한 반면 29억7700만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무역수지 적자폭이 18억4500만 달러에 달한다.
대일 적자가 가장 큰 분야는 전자부품으로 상반기 적자액만 21억2300만 달러에 이른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예고한 대로 일본이 한국을 안보상 우방국가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일본 기업은 전략물자를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반도체 집적회로(IC) 등 핵심 전자부품이 바로 이 허가 대상 전략물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일반기계부품(―5억1500만 달러), 1차 금속제품(―4억5000만 달러), 전기장비부품(―4억900만 달러)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대일 적자폭이 컸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 정권마다 바뀌는 소재부품 육성 방안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100대 소재부품 개발에 매년 1조 원을 투입하는 등 국산화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는 2001년 소재부품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소재부품 전문기업 육성에 첫발을 뗐다. 2013년에는 ‘소재부품 미래비전 2020’을 통해 2020년까지 한국의 소재부품 수출 규모를 6500억 달러로 늘려 일본을 제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그러나 목표 연도가 2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 지난해 소재부품 수출액은 3162억 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소재부품 산업에서 보듯 타깃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헬리콥터로 예산을 뿌리는 식의 지원으로는 무역 역조 현상을 개선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콕 집어 외과수술식으로 정밀 지원하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권마다 바뀌는 소재부품 정책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재부품 산업은 상용화에 오랜 시간이 걸려 장기적이고 일관된 지원이 필수적이다. 일례로 2013년 정부는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200대 소재부품’에 대한 개발 과제를 밝혔다. 하지만 2016년에는 다시 4차 산업혁명 대응용 50대 과제, 주력산업 고도화용 50대 소재부품에 주력하겠다고 정책 방향을 바꿨다.
부처 간 엇박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산업부에서 소재부품 산업 지원책을 발표하면 규제 부처에서 화학물질 규제를 들고 나오는 식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범정부 차원에서 핵심 소재만이라도 분명하게 연도별 목표를 설정해 국산화율을 체크하거나 법제화 등을 통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되는 정책 플랜을 짜야 한다”고 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