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들이 불황 업종을 벗어나 미래산업으로 재편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각종 규제, 자금 부담 등 여러 걸림돌로 애를 먹고 있다. 자동차, 조선 등 침체에 빠진 제조기업이 한계기업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역량 있는 ‘알짜기업’의 사업재편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사업 전환기에 은행들이 자금 회수”
제조기업들은 금융회사들이 창업 초기와 유사한 업종 전환 시기에 냉정하게 자금을 회수해가는 행태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통신 및 조명 부품을 제작하다 최근 업종 전환을 고민 중인 세진텔레시스의 주대철 대표는 “업종 전환 시기에는 매출이 쉽게 안 늘어서 재무제표가 안 좋을 수밖에 없는데 은행들은 이걸 보고 대출을 회수하고 보증을 취소하려 달려 든다”며 “은행들은 신사업의 미래가치를 봐야 하는데 왜 안전한 대출만 하려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사업 재편기에 있는 기업들에는 창업기업처럼 대출이나 보증 특례를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래산업으로 재편하는 기업 미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조기업들은 미래산업으로 재편하는 데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의 ‘산업구조고도화 지원 프로그램’ 지원 명세(1∼5월)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생산효율화’ 분야에 338건이 지원됐다. 전체 지원 사업의 85%다.
반면 제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사업구조 개편·전환·확장’ 분야에는 24건(6%)만 지원됐다. 제조기업들이 기존 시설이나 기술 투자에만 집중하고 미래산업 재편에는 적극적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찬가지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사업전환지원사업 참여 기업도 2014년 354곳에서 2018년 288곳으로 18.6% 감소했다.
이에 따라 제조업의 사업재편을 촉진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은 “정부는 기업들에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처럼 신사업이 중요하다는 시그널을 계속 주면서 혁신역량이 없는 기업들을 연명시키는 보조금은 줄이는 대신 ‘알짜기업’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혁신 여력이 없는 기업은 다른 우량한 기업이 키울 수 있게 ‘출구전략’을 마련해 줄 필요도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어려운 중소기업은 매각할 방법이 없어 힘들어도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경우가 있다”며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이런 중소기업을 사들여 키울 수 있게 인수합병(M&A)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50, 60대 고령층이 많은 중소기업 대표들이 신산업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컨설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자동차 부품업에서 소방 부품업으로 사업재편에 성공한 김재수 서해테크 대표는 “실제로 신사업을 넓게 경험한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사업재편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이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업종 전환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