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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분쟁’ 개입 않고 관망하는 美…이유는?[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입력 | 2019-07-09 14:00:00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어떤 것이고 (한일 과거사와 무역분쟁 등에 따른) 삼각동맹의 해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명재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8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트럼프 미 행정부 내에서는 냉정하고 신중한 기류가 동시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재나 이를 통한 해결을 섣불리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정은 동아일보·채널A 워싱턴 특파원

Q. 오바마 행정부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삼각동맹의 해체를 방지하는데 있었는데요(위안부 합의, 한일정보보호협정), 트럼프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은 어떤 것이고 (한일 무역분쟁 등에 따른) 삼각동맹의 해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명재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8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A. 2015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은 실제 성사되기까지 물밑에서 교섭 난항이 계속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한일 갈등이 악화되던 시점이었던 탓에 회담의 장소와 시간, 방식 등을 놓고도 양국 간 첨예한 이견 차이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이견을 중재하며 한일 회담의 개최를 도왔던 것은 미국이었지요. 당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막후에서 중재자 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동북아 지역의 외교정책 축인 한미일 3각 협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한일 갈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게 맞습니다.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계속되던 시점에 북핵의 위협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있었고요.

트럼프 행정부는 다릅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맹과의 협력에 앞서 우선 큰 틀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외교정책부터 볼까요.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의 동아시아 전략을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으로 바꾸고 이를 동아시아 지역의 주된 외교정책 기조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3월 3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컨벤션 센터에서 버락 오바마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인도태평양 전략은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범위를 확대하고, 이 지역 국가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자유롭고 열린(free and open)’ 인도태평양을 만들어나간다는 내용입니다.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오죠.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 이 전략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사실상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난달 미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위해 일본과 인도, 호주는 물론 홍콩과 대만까지 끌어들이고 있지요.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일 간 밀착, 특히 군사 분야의 협력 강화입니다. 일본은 최근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대규모로 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은 이에 호응해 민감한 군사 분야 정보의 공유 폭을 확대하며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여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아베 총리의 각별한 노력이 더해져서 미일 양국은 신밀월 관계를 과시하고 있죠.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초점을 옮긴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일 3각 협력의 필요성을 이전 행정부만큼 강하게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과의 갈등, 군사적 긴장감이 완화되면서 ‘공동의 적’을 향한 3국 간 긴밀하고 신속한 정보공유나 협력의 필요성도 그다지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고요. 지난달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은 없었던 반면, 미국 일본 인도의 3국 정상회담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은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신조 총리가 11일 오후(현지시간) 베트남 다낭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APEC정상회의 정상기념촬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하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다낭=청와대사진기자단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은 양국 관계의 개선을 촉구하며 동북아 지역에서의 한미일 3각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특파원들이 국무부에 관련 질의를 보낼 때마다 이 대답이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내에서는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갈등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섣불리 중재에 나서지 않으려는 냉정하고 신중한 기류가 동시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재나 이를 통한 해결을 섣불리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브래드 글로서먼 퍼시픽포럼 국장은 “미국이 한일 갈등에 개입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의 경제적 보복 조치를 선호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은 이런 문제를 중재할 윤리적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3각 협력 구도는 해체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장기전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으로서는 동북아 지역의 두 핵심 동맹국 간의 갈등 악화를 마냥 두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그 갈등이 한일 양국 간 정치적, 경제적 충돌을 넘어 미국의 안보, 군사 분야의 이해관계를 건드리게 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정은 동아일보·채널A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