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아직 미비한 부분들이 있지만 직장 괴롭힘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피해자인 근로자는 고용 형태나 근로계약기간 등을 불문하며 장소 역시 반드시 사업장일 필요가 없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에 의하면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괴롭힘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오랫동안 직장인들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이를 단지 ‘성격 나쁜 상사’를 잘못 만난 죄로 넘겨버리거나 아래 직원의 ‘당연한’ 서러움처럼 여겨왔다. 사회심리학이 직장 내 괴롭힘에 줄 수 있는 교훈이 있을까. 최근 직장에서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말이나 행동을 과거보다 조심하는 측면이 있다면 이는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미투(#MeToo) 운동으로 촉발된 사회적 상황이 바뀌어 행동을 바꾸게 된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그 사람의 성격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
둘째, 이 법안은 발의 이후 6년 만에 시행하게 됐다.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있어도 직장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직장 내 교육에 참여하지도 않는다면 이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될 것이다. 근로자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이 법은 의미가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상세한 매뉴얼이 나와 있다. 연말 정산과 관련된 서류를 살피듯 근로자로서 내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 잘 읽어보자.
셋째, 문화를 바꾸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최근 ‘땅콩회항’의 피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의 ‘플라이 백’을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피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고 주체는 꼭 괴롭힘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신고할 수 있게 돼 있다. 동료로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괴롭힘의 가해자가 회사 내에서 잘나가는 사람일 때 우리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그 직장에서 살기 위해 적극적인 보호자 역할을 못 할 때가 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를 따돌리고 뒷담화로 공격하는 2차 가해자는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는 책에서 군대식 모델의 상명하복을 극복하는 것이 직장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나는 오늘도 기수와 선후배를 따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명하복 문화를 강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