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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안 보완해 정치적 타결을” “ICJ 사법적 해결도 대비”[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입력 | 2019-07-10 03:00:00

강제징용 해법… 지일파 두 학자에 묻다




험악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진 한일관계. 그 근저에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양국 간 갈등이 있다. 해법은 있을까.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왼쪽)는 우리 정부가 내놓은 기금안을 축으로 해 정치적 타협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 등 제3자의 판단에 맡기는 선택지도 있다고 제안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영아 논설위원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발동으로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한일 간 최대 쟁점은 지난해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갈등이다. 판결은 일본 측의 거센 반발을 샀고 이후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외교가에서 논의되는 해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전략적) 방치, 둘째 기금조성안, 셋째 사법적 해결이다. 지난 8개월간 우리 정부는 ‘방치’ 전략을 썼지만 그 결과 한일관계는 최악의 나락으로 빠졌다. 기금조성안은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제시한 안이다. 양국의 유관기업이 참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사법적 해결은 중재위,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한 분쟁 해결 방법을 가리킨다. 당장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 설치 요청에 18일까지 답변해야 한다. 기금안과 사법적 해결에 각기 무게중심을 둔 지일파 학자들에게 해법을 들어봤다. 두 사람 모두 가능하다면 기금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입장이 같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2012년과 2016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힘을 보탠 지일파 학자. 그는 우리 정부가 6월 19일 제시한 ‘한일 유관기업에 의한 징용기금’안을 보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기금 조성안은 정치적 타협을 우선하는 것인가.

“우리 정부의 이번 제안은 삼권분립을 전제로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되 ‘일본기업의 자발적 기금 참가’라는 언질을 둬 일본 측이 타협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하고 당사자 간 화해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즉각 거부했다.

“일본 정부가 거부한 이유는 일본 기업이 한국 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 전례가 만들어지면 향후 북-일 수교 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정부가 8개월 만에 처음 내놓은 안이 피해 당사자와 대화가 충분하

재판 기간 피해자에 너무 길어

지 않았던 점도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하에 어렵사리 설치된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와 합의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에 이르지 않았나. 일본 정부로서는 그 전철을 되밟을 이유는 없다고 봤을 거다.”

―일본이 추진 중인 중재위안은 어찌 보나.

“정치적 타협이 불발로 끝날 경우 중재위는 물론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중재위는 우선 제3국 위원 임명, 중재대상과 시기, 방법 등에 대해 한일 양국이 합의해

양국 정상 만나 돌파구 마련을

야 하는데 첫걸음부터 장벽에 부닥칠 거다. 가령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 양국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의 불법 여부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은 강제병합을 불법으로 인정한 반면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국제법상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재위는 상호 간 의견 차를 해소하지 못해 시작부터 결렬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어떤가.

“우선 피해자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최소 3년 이상 걸리는데 대부분 90대인 생존자에게 시간이 남아 있을까(생존자는 지난해 2월 기준 약 5200명). 재판 과정에 한일 간 신경전이 증폭돼 외교적 소모전이 될 공산도 크다. 여기에 만에 하나 패소할 경우 치명적이다. 국내에서 정치적 역풍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양국 국민에게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기금조성은 해법이 될 수 있나.

“화해치유재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도 6·19 제안을 보완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국 정부는 포스코 등 청구권 자금의 수혜기업인 16개사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전체 모금 금액과 배분방식, 재단 운영체제 등에 대해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이 필요하다. 피해자와 지원단체, 전문가들과 만나고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도 설득해야 한다. 이 밖에 피해자의 범위와 시효를 정하고 개인보상은 이번으로 최종 종료된다는 것, 노무현 정부 당시 보상을 받은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국내 입법을 통해 한국 측이 종결시킨다는 점 등도 약속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일본 측이 받아들일까.

“한국 측의 적극적인 해법을 일본 측에 설명하고 이를 승인하는 절차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양국관계 개선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나 별도 한미일 정상회담, 한일 셔틀회담 형태도 좋다. 강제동원 해법을 바탕으로 양국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비핵화 등에서 한일협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지금까지 한국에서 중재위나 국제사법재판소 안은 아예 논외로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이 추진하는 안이라는 경계심이 강했고 패소의 리스크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원덕 교수는 소수의견이지만 꾸준히 검토할 필요성을 말해왔다. 양국이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데다 상반된 양국의 입장에 대해 객관적 시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금안이 해법이 안 되는 이유는….

“기금 조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일본이 받

양국 최고법원 판결 엇갈려

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인원 규모와 법적 시효를 확정하고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우선 배상받을 수 있는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 현재 법원에서 14건, 900여 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권에서는 7만2000여 명이 피해자지원법에 따라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로는 약 21만 명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존재한다. 어디까지를 범위로 할 것인가. 기금이 마련돼 소송에 의한 보상이 시작되면 자칫 소송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가령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을 받은 이춘식 할아버지의 경우 2012년부터의 지연금까지 더해 2억 원이 넘는 액수를 받게 돼 있다. 반면 2007년 피해자들은 최고 2000만 원씩 받았다. 후손들이 ‘왜 우리 할아버지는 2000만 원이고 저 할아버지는 2억 원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호사들까지 중간에 껴 엄청난 소송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현실을 뻔히 아는 일본 정부나 기업이 기금 출연에 협력할 가능성은 없다.”

―일본이 한일 청구권협정 제3조에 의거한 중재위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양국이 3인의 중재위원 구성에 합의할 수 있을까. 혹 중재위원회가 최종 결론을 낸다 해도 한일 양국민이 승복할까도 문제다. 그보다는 국제사법재판소 공동제소에 의한 해결이 가장 현실적이다. 최종 판결까지 3∼4년간 시간을 버니 그동안 양국 간 마찰을 유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양국이 합의

제3자의 판단이 평화적 방법

하면 법적 강제집행을 보류하거나 정부의 배상금 대집행도 가능해진다. 한국과 일본 최고법원의 판결이 정반대이니 제3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은 평화적 분쟁해결 방식이 된다. 재판 과정에서 화해에 의해 해결책을 도출할 수도 있다.”

―한국이 국제사법재판소를 피하려는 이유는 혹시 모를 ‘패소’ 가능성 때문인데….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한국 일본 모두 부분승소, 부분패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더욱 재판 과정에서 양국 간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계사에 남는 재판이 될 수도 있다. 논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와 개인의 문제, 즉 한일 협정에 의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는가 여부다. 이건 한국이 이긴다. 둘째, 식민지배는 불법인가. 배상의무가 있는가. 이건 한국이 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은 신생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선언적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인정하더라도 배상은 하지 않는다. 셋째, 1인당 1억 원대 배상금은 적절한가. 독일이 폴란드에 배상할 때도, 일본 기업들이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할 때도 대개 2000만 원 안쪽이다. 2007년 강제징용 피해 사망자도 2000만 원, 5·18 사망자 배상금이 4000만 원 선이었다. 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 날지는 잘 모르겠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