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who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게임업계에 충격을 던진 소식이 들려왔다. 제72차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키로 한 것이다.
이는 WHO의 국제질병분류를 따르는 국내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WHO 회원국은 2022년부터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을 적용할 수 있다. 관례상 WHO의 권고 사항을 그대로 따르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ICD-11을 기준으로 KCD(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가 개정되는 25년(26년 시행)이 등재 논의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이용장애의 질병 코드화를 막아야 한다는 반대 측과 질병 코드화 찬성 측의 대립각이 날카롭게 섰다. 양측 전문가의 연구를 폄훼하는 수준의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상징 (출처=각 부처)
특히, 게임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국민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도 견해차가 크다. 정부 입장에서도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질병 코드화해야 확실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주장과 질병 코드화 하기에는 판단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각 부처 장관부터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자리에서 "일단 WHO에서 확정적으로 게임장애에 대해서 질병코드가 정해지면, 저희도 그것을 곧바로 받아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대해 찬성하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 (사진=문화체육관광부)
그간 양 부처가 보여준 모습도 많은 차이가 있다. 문화부는 WHO의 결정이전부터 게임질병코드화 반대 움직임을 보여왔다. 문화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WHO에 질병 코드화 반대 의견을 전했다. 게임 과몰입은 게임이 아닌 환경이 원인이라는 장기간의 추적 연구 결과도 함께 전달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에는 사회적인 합의도 연구도 부족하단 입장이라는 목소리도 높였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및 협단체들도 문화부와 뜻을 함께 했다.
문화부 박승범 과장은 5월 진행된 KBS열린 토론에서 "의료인의 전문성과 이런 것을 전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 기준 검증 논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실이며, 치료는 당연히 의료인이 몫이지만, 질병 코드화는 의학계에서도 보건행정 영역으로 사회구성원과 법학자, 의학자가 같이 만들어가는 일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질병코드화 하면 유병률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큰 비용이 드는 일을 유병률만 보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구가 필요해 연구하기 위해 질병코드화 하자는 주장에 반대 논리를 펼친 것이다.
반면 복지부는 입장이 다르다. 먼저 같은 토론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 조근호 과장은 반대 의견을 내놨다. 그는 "정신과의 진단 기준은 사회적인 합의가 아니라 임상적인 문제로 판단한다는 것이 옳다. 그래서 질병코드도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고, ICD도 11번째나 개정된 것이다. 12번째 13쨰도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복지부에서 보여준 태도도 게임에 대한 복지부의 이해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복지부는 2015년 1월 ‘게임중독’ 광고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이 공익광고는 '다음은 게임중독을 테스트하는 문항입니다.'라는 글 이후에 '게임 BGM이 환청처럼 들린다', '사물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다',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가끔 현실과 게임이 구분가지 않는다’는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광고에서는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게임중독을 의심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게임중독,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파괴합니다’라며 광고는 마무리된다. 광고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광고와 유튜브 등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자칫 게임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어 지탄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중독 광고 (사진=게임동아)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해 11월 또 다른 중독 예방 광고를 내보냈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한 주인공이 등장하며, 이내 '중독을 멈추면 일상이 돌아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운동, 춤, 악기 연주, 공부 등 게임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영상이 끝이 난다.
해당 광고는 게이머가 게임을 즐기는 과정이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표현된 점, 게임을 하면 마치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듯한 뉘앙스를 띄고 있는 점 등이 공분을 샀다. 또한, 유명 스포츠 브랜드 N사의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한 점도 논란이 됐다.
두 차례의 광고 모두 복지부가 게임을 이미 중독 문제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해당 광고는 문화부가 당시 게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토대로 복지부에 공익광고의 상영을 중단 요청한 이후에 조기 중단됐다.
여기에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 30일에는 복지부 김강립 차관이 "WHO 권고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할 만한 필요성이 있다"는 발언을 해 질병 코드화 반대 측 진영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미 ‘게임이용장애’를 ‘게임중독’으로 규정했다는 이야기다. 게임이용장애 반대 측은 이는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화를 주장하는 세력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고’했지만, 실제 그들의 미리 속에는 "게임은 질병이다"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여준 것이란 주장까지 펼쳤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 (사진=보건복지부)
이처럼 문화부와 복지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협의체가 구성되어 게임이용장애 문제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지난 5월 28일 WHO의 질병코드 부여와 관련한 국무조정실장 주재 차관회의를 통해 협의체 구성이 발표됐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복지부, 문화부 등 관계부처, 게임업계, 의료계, 관계 전문가, 시민 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 6월 24일 어렵게 가동된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 "질병코드화 문제는 국조실(국무조정실) 중심의 민관 협의체를 통해서 지혜롭게 풀어갈 것이며, 협의체를 7월에 구성하게 될 것이고, 장기간 객관적, 과학적인 논의들을 거쳐서(중략) 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본지의 질의 결과 양 부처 관계자 모두 "협의체를 통해서 나오는 의견이 부처의 공식 입장이 될 것이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그간 다양한 방면으로 입장을 전해왔던 양 부처가 일단 협의체 운영으로 뜻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 워낙 큰 이슈라 당분간 별도의 발언을 자제하라는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협의체의 구성에 진입한 양 부처가 서로 입장 차이가 너무 커 협의체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협의체가 들려줄 정부의 목소리에 관심이 집중된다.
동아닷컴 게임전문 조광민 기자 jgm2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