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만난 한 야구 관계자는 시들해진 야구 인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야구가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야구가 그렇다. 투수는 던지고, 타자는 친다. 한 팀은 이기고, 다른 팀은 진다. 어쩔 때는 잘해서 이기기보다는 상대 팀이 더 못해준 덕분에 이기기도 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드라마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런 야구계에 지난달 말 예상치 못했던 한 개의 공이 날아들었다. KBO리그 최초의 비선수 출신(비선출) LG 투수 한선태(25)가 그 주인공이다. 1군 선수 한선태는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7년 전 그는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한 자동차 외형 가공 공장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놀이를 좋아해 친구들과 틈만 나면 캐치볼을 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야구 선수를 꿈꿨던 것도 아니다. 중3이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으로 열린 한일전이 처음으로 집중해서 본 야구 경기였을 정도다. 언더핸드로 일반인치고는 빠른 시속 120km가량의 공을 던지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고교 투수의 스피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회인 야구가 그의 주 무대였다. 군대는 강원 철원 수색대에서 21개월을 복무했다.
그는 “공 한 개, 한 개가 내게는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매 구를 소중하게 집중해서 던지고 있다”고 했다. 선수의 마음가짐은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LG 팬은 물론이고 다른 팀 팬들조차 한선태의 투구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무미건조했던 야구에 그렇게 또 하나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선 생기가 넘쳐흐른다.
작품성과 흥행 두마리 토끼를 잡았던 영화 ‘머니볼’에서 주인공 빌리 빈 역을 맡았던 배우 브래드 피트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남겼다.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 마운드에 선 한선태를 볼 때마다 그 대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