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평양국제비행장(순안공항)에 도착한 최덕신의 아들 최인국 씨(오른쪽)가 리명철 북한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게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주성하 기자
1951년 2월 8∼11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는 지리산 인근 20여 개 산골마을에서 1400여 명을 학살했다. 군인들은 부락들을 돌며 총과 수류탄, 박격포 등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죽였다.
산청 함양의 사망자 705명 중 600여 명이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였다. 거창에선 719명 중 15세 미만 어린이만 359명에 달했다. 6·25전쟁 당시 저지른 국군의 가장 끔찍한 범죄 가운데 하나였다. 만행을 주도한 11사단장이 바로 1986년 4월 월북한 최덕신이다.
6·25전쟁 이후 월북한 남한 인사 중에서 최고위급으로 꼽히는 최덕신은 북한에서 김일성훈장 등 각종 훈장을 받으며 애국열사로 추앙받았다. 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북한이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 영화 ‘민족과 운명’ 1∼4부에서는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최덕신 사후 3년 뒤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민간인 학살 장면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속에서 최덕신은 학살 장소를 찾아가 “빨갱이를 죽이라고 했지 누가 양민을 죽이라고 했느냐”며 분노하거나, 평양에 가기 전 “단테의 기름 가마면 내 죄가 세척될 수 있을까”라며 번민하는 장면도 나온다.
한국의 거창 산청 함양 민간인 학살에 관한 조사 자료를 보면 최덕신이 민간인 학살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만행을 저지른 최덕신마저 김일성이 용서해 준다는 설정을 하다 보니 북한은 잔인한 범죄자에 대한 성토 기회마저 포기한 것이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학살 사건의 주범인 최덕신이 북한에 가서 미화되고 애국열사로 추앙받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 최덕신의 둘째 아들 최인국 씨가 몰래 월북한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인국 씨는 6일 평양에 도착했으며, 앞으로 북한에서 영주할 계획이다. 또 어머니 류미영에 이어 노동당의 관변 야당인 천도교 청우당의 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남쪽에서 72년을 살았던 최인국 씨가 북한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인과 자식들(1남 1녀)은 서울에 두고 갔을 것이다. 가족은 서울에서 자유를 맛보며 살게 하고, 자신은 자식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평양에서 부모가 남긴 ‘적금’을 타먹으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계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계산이 들어맞을지는 지켜봐야 안다.
한편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최고위급 인물인 황장엽의 집안이 8촌까지 멸족된 것을 다 아는 북한 사람들에게 북으로 망명한 남쪽 최고위급 인물 최덕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월북 이후에도 서울에서 풍채 좋은 모습으로 70년 넘게 살다가 평양으로 옮겨와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될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