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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조 新행정수도… 시시 이집트대통령의 ‘현대판 파라오’ 프로젝트

입력 | 2019-07-11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이집트 정부가 카이로 동쪽 외곽에 건설 중인 신행정수도에 들어설 콥트교회 건물.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9일 오전(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사막 지대. 이곳은 이집트가 2022년까지 대통령궁, 정부 부처, 국회, 외교공관 등 주요 시설의 이전을 목표로 700km² 규모의 신(新)행정수도(NAC·New Administrative Capital)를 건설하고 있는 현장이다.

끝이 안 보이는 모래벌판에 대형 공사 크레인들이 가득했다.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과 각종 건설 중장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완공된 건물부터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까지 진행 상황도 제각각이었다. 대부분 사무실 건물이지만 아파트 등 주거시설, 이슬람사원 등도 보였다. 카이로 도심에서 이곳까지 기자가 탑승했던 우버 택시의 20대 중반 운전사는 본인도 이곳에 와 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에서 신행정수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보도는 자주 접했지만 실제로 보니 장관이다. 완공되면 이집트 전체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낙후된 카이로를 대체하는 NAC

이집트의 신행정수도 건설은 대도시 과밀화 부작용에서 탈피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현재 이집트 인구 1억 명 가운데 2000만 명이 카이로에 산다. 얼핏 보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과밀화 수준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체감하는 부작용은 상상 이상이다.

우선 △도로 △상·하수도 △공원 등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이로 인한 교통체증, 대기오염, 주거시설 부족 등 부작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기존 건물은 대부분 개·보수를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낡았다. 거친 모래바람에 원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렇게 바래서 도시 전체 분위기도 우중충하다. 이 와중에 주인 없이 카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개들은 그야말로 공포 영화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많은 주민들은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지 않으면 ‘늙고 병든’ 카이로를 개선할 수 없다. NAC 같은 신도시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감도에 따르면 한복판에는 뉴욕 맨해튼에 맞먹는 초고층 건물들이 대거 들어선다. 이집트투데이

이를 잘 알고 있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2015년 NAC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특히 그는 NAC 건설에 무려 450억 달러(약 54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16년 재정 위기에 처한 이집트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년간 12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액수다. 현지 언론이 “건국 이후 최대 국책사업”이라고 보도하는 이유다. 일부는 NAC를 이집트의 주요 수입원인 수에즈 운하 건설과 비교한다.

시시 대통령은 지난 4년간 공사 현장을 자주 방문했다. 공사 상황 보고도 수시로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에도 공무원들에게 “NAC 건설 속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 中 일대일로 종속 우려

많은 이집트인들이 NAC 건설 취지에 공감하지만 우려도 높다. 우선 막대한 건설비 문제. 이집트 정부는 상당수 자금을 중국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NAC 상업지구에는 385m의 초고층 건물을 포함해 18개의 대형 건물이 들어선다. 공사 대부분을 중국 국영기업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가 담당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아예 NAC 관련 공사를 “이집트를 대상으로 한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 ‘일대일로(一帶一路)’”라고 못 박았을 정도다.

이집트인들도 일대일로에 섣불리 참여했다 막대한 빚만 떠안은 채 중국의 경제 식민지가 될 위기에 처한 파키스탄, 스리랑카의 사례를 잘 알고 있다. 외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 이집트인은 “중국의 일대일로 지원을 받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중국에 종속됐다. NAC에 중국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건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공사 현장뿐 아니라 카이로 시내에서도 중국인 노동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여기에다 2016년 4월에 불거진 영토 이양 사건은 이집트인들의 ‘외국 트라우마’를 심화시켰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홍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티란섬 및 사나피르섬에 대한 관할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양도한다고 기습 발표했다. 두 나라는 1950년대부터 두 섬의 영유권을 두고 다퉜다. 이 때문에 갑자기 사우디에 해당 섬을 넘겼다는 발표에 많은 국민들이 깜짝 놀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집트 정부가 두 섬을 사우디에 양도한 이유가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오일머니 원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의 자존심도 큰 상처를 입었다. 카이로 외교가에서는 당초 이집트가 NAC 개발에 아랍에미리트(UAE) 자금을 유치하려 했지만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자 부작용을 알면서도 중국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독재자 통치 기반 강화’ 우려도

NAC 건설이 당초 목적과 달리 사실상 종신 집권을 시도하고 있는 ‘현대판 파라오’ 시시 대통령의 통치 기반 강화에만 쓰일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군인 출신인 시시 대통령은 2013년 쿠데타를 통해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의 민선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NAC 외에도 ‘제2 수에즈 운하 건설’ ‘대규모 사막 개간 프로젝트’ 같은 대형 국책 토목사업에 관심이 많다. 이 때문에 이집트 경제 현실을 도외시한 과도한 개발 사업으로 국민의 지지를 손쉽게 얻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시시 정권이 NAC 안에 중동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건물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도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이란 지적이 나온다.

시시 대통령이 올해 초 중동 최대 규모인 NAC 내 콥트교회 개관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도 이런저런 뒷말이 나온다. 콥트교는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및 중동에 기반을 둔 기독교의 한 분파다. 전 세계적으로 약 2000만 명의 신자가 있고 이 중 절반인 1000만 명이 이집트에 있다. 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이집트에서는 소수자여서 상당한 박해도 받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 등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한 회사원은 “시시 정권이 정치 및 언론 자유를 통제하면서 소수계 콥트교도들을 포용하기 위해 NAC에 대형 콥트교회를 만든다는 것이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 반정부 시위대 원천 봉쇄 의도

올해 1월 개관한 신행정수도 내 콥트 기독교 교회에서 연설 중인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오른쪽). 사진 출처 아랍뉴스

시시 대통령이 NAC 건설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반(反)정부 시위대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 민주화운동 즉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국민이 심심찮게 몰려 나왔던 카이로 한복판 타흐리르 광장에서 멀리 떠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의미다.

시시 대통령은 자신의 선배 군인이자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 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2011년 타흐리르 광장 시위로 실각한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핵심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대부분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 정부 기능이 쉽게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지 소식통은 “타흐리르 광장에서 발생하는 시위는 늘 집권 세력에 ‘잠재 위험’으로 여겨진다. NAC 건설에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을 때 시위 참가자들이 정부 부처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속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사 현장에서는 성벽을 연상케 하는 높은 벽이 설치된 건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벽 위에는 감시 초소도 있었다. 또 공사장 곳곳에는 경찰관들이 배치돼 삼엄한 기운이 강했다. 심지어 종교 시설인 NAC 내 콥트교회도 무장 경찰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할 정도였다. 해당 경찰에게 “한국에서 왔다. 이 교회가 유명하다고 해서 왔으니 잠깐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지만 연거푸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사진 촬영도 경찰관들이 제지할 정도였다.

과연 시시 정권은 각종 논란을 딛고 NAC 건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시시 대통령의 종신 집권 또한 이 공사의 성패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