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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안착을 위한 제도개선 시급하다[시론/박지순]

입력 | 2019-07-12 03:00:00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주 52시간을 절대 상한으로 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사회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작년 7월 300명 이상 대기업을 필두로 올해 7월부터는 노선버스사업, 방송업, 금융업 등 종전 특례업종 중 300명 이상 사업에 대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50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들에게 일과 생활의 양립, 재충전의 시간 등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상당수의 대기업들은 근무방식과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그러나 업종이나 직무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 저하 및 경쟁력 약화, 근로자의 소득감소, 근로시간 규제를 피하려는 편법과 탈법 등 부작용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서구 산업 국가들이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 전제로 발전시켜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근로시간의 단축과 유연한 근무시간의 활용이 결합될 때 기업과 근로자는 그 효과를 최대한 누릴 수 있다. 핵심은 생산수요에 맞는 탄력적 근로시간 편성 또는 근로자에게 자율적인 업무시간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전력투구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부분 개선이 근로시간 단축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절대적 해법이 아니다. 대기업, 중소기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기업규모와 업종에 따라 근로시간의 획일적 단축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의 양상이 다양하기에 탄력근로제 개선이 유일한 처방전이 될 수 없다.

탄력근로제는 기업 입장에서만 유연근무제일 뿐 근로자에게는 타율적 근무제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기업의 선택에 따라 노동력을 투입해야 해서다. 업종ㆍ직무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종업원의 근무몰입도와 생산성 등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유연근무제로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종업원들의 시간선택에 대한 욕구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일, 1주, 1개월의 업무계획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원한다. 업무완수, 임금수준의 유지, 여가시간의 계획적 활용을 위해서는 자기주도적인 근무시간의 편성이 가능해야 한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업무와 사적 생활(양육, 진료, 교육, 여행 등)에 자유롭게 배분할 수 있어 일과 생활의 균형을 확보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이미 많은 대기업들이 출퇴근시간의 자율적 운영을 전제로 선택적 근로제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신제품 개발이나 시장 변화에의 대응 등을 위해 필요한 집중근로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가능하여 선진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따라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함으로써 근로시간에 대한 근로자의 자기결정권을 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거나 반대로 부족한 시간이 3개월에 걸쳐 조정됨으로써 근로자는 집중 근무로 업무성과를 높일 수 있고 그 반대급부로 비교적 긴 휴일이나 휴가를 사용함으로써 휴식과 개인생활에 투자할 수 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도입에는 해당 직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서면합의의 주체인 근로자대표제를 현실화하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반면 근로자들이 장시간노동에 빠지지 않도록 1개월을 초과하는 정산기간을 정할 경우 행정관청에 신고하도록 하고, 1주 1일의 휴일 보장, 장시간 근로자에 대한 특별휴가 보장 등 건강권 보호를 위한 조치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저임금 근로자들이 많은 중소기업에서는 노사 모두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방식을 동의하지 않는다. 인력관리의 어려움과 임금감소가 필연적이어서다. 현행 30명 미만 사업장에 한시적으로 인정되는 특별연장근로나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전제로 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연장근로의 범위를 완화하고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