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 파장]화평-화관-산안법 ‘족쇄’ 찬 기업들
재계 관계자는 11일 “R&D를 할 때는 화학물질 배합을 바꿔가며 쓰고, 그 결과가 기업의 노하우다. 그런데 산안법이 시행되면 물질을 바꿀 때마다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데, 그 시간만큼 뒤처지는 것 아닌가”라며 “화평법에 따라 글로벌 회사들이 영업비밀로 삼는 화학성분까지 알아내서 등록해야 하는데 현실상 쉽지 않다”고 했다.
○ “취지 이해하지만 첩첩 규제 부담”
산안법과 같은 시기에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에 통풍 등 안전설비를 의무화한 법으로 올해 말이면 유예기간이 끝난다. 화학접착제 생산 중소기업 A사는 이 법에 대비해 연 매출(550억 원)의 30%에 달하는 180억 원가량을 들여 공장시설을 고치고 있다.
산업계는 법의 취지와 방향은 맞는다고 본다. 하지만 엄격한 규제를 담은 3개 법이 한 번에 시행되면 “안 그래도 뒤떨어진 한국 소재·화학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 경쟁력이 일본에 뒤떨어진 것은 무려 100년이 넘은 일본의 업력을 따라잡기 힘들고 기술력, 인재 부족 등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정부가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는 3개 법 모두 화학물질 정보를 일일이 등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글로벌 화학업체들이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성분 공개를 꺼리는 데다 고유 물질명이 없는 화학물질도 많다”며 “사전 신고를 못 한 이런 물질들의 등록이 늦어지면 꼼짝없이 처벌을 받을 판”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당장 단속에 들어가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기업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범법자로 몰려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화학업계 중소기업 대표는 “법을 잘 지키려면 화학 분야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며 “가뜩이나 중소기업은 인력난이 심한데 이런 고급 인재를 구하기는 훨씬 어렵다. 전문가가 없어 실수로 법을 어겨 처벌을 받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 유럽보다 엄격한 규제
환경부 관계자는 “일본보다 엄격한 EU의 제도를 도입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라면서도 “업계와의 소통 폭을 더 넓혀 현장의 어려움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황태호 taeho@donga.com·강은지·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