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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깬 8590원…아베 ‘변수’ 결정적, 3% 마지노선 무너져

입력 | 2019-07-12 08:31:00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원회의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3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8590원으로 결정한 뒤 회의실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9.7.12/뉴스1

이성경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전원회의장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13차 전원회의를 마친 뒤 사용자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9.7.12/뉴스1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 대비 인상률 2.9%인 8590원으로 결정됐다. 그 배경에는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는 3% 인상도 못 견딜 것”이라는 경영계 대표 사용자위원들의 전략적 마지노선이 있었다. 동결을 고수하기는 어렵다는 판단하에 3%라는 현실적 타협안을 설정했다. 여기서 10원을 더 낮춰 2%대 인상률이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는 숫자가 나왔다.

당초 예상보다 낮은 8590원이 가결된데는 공익위원들의 지지가 컸다. 최근 악화한 경제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전쟁과 수출부진으로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이 잇따라 하향조정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촉발한 수출 규제 조치는 결정적이었다. 최저임금 심의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 ‘일본발’ 초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공익위원들이 느끼는 경기침체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최저임금 심의·의결을 담당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오전 5시30분쯤 약 13시간에 걸친 밤샘 회의 끝에 내년 최저임금을 확정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노사 위원들은 전날까지 ‘삭감’과 ‘두자릿수 인상’이라는 좁히기 힘든 의견 대립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날 만큼은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의 의견차를 보인 상태로 마지막 표결에 돌입했다.

최종안으로 노동계는 시급 8880원(6.8% 인상)을, 사용자위원은 시급 8590원(2.9% 인상)을 제시했다. 이전까지 1400원에 육박한 양자 간 차이가 이번에는 300여원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 결과 15 대 11로 사용자안이 채택됐다. 노사가 각자의 안에 9명씩 몰표를 던졌다고 가정하면 사용자안이 공익위원의 표를 6 대 2로 더 많이 가져 온 셈이다.

사용자위원들이 공익위원 표심을 끌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이라는 호소와 함께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대외 리스크 강조가 주효했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이날 회의 종료 직후 브리핑에서 “사용자 측에서 실물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미중 분쟁이나 일본에서의 (무역제한) 부분들이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얘기도 많다. 그런 부분이 많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용자위원들은 3%는 도저히 넘기 어렵고, 3% 인상률을 적용한 8600원 바로 아래에 해당하는 8590원을 제시했다고 얘기했다”며 “(공익위원에게) 추가 수식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공익위원들은 사용자 측에서 별도의 수식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영계가 이전까지 호소했던 ‘산업 현장의 부작용과 제반 경제여건’이라는 논리가 효과적으로 먹혀 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위원들은 이번 막판 심의에서 인상률 3%를 넘을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용자위원은 “3% 인상은 소비자물가지수 등 물가 인상률과 경제 성장률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동결에 해당한다고 봤다”며 “우리는 동결이 아닌 삭감을 주장했던 만큼 그 미만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앞서 사용자위원들은 내년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하는 이유로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 10.9% 가운데 협상배려분 1.2%포인트(p)와 산입범위 확대로 인한 실질인상효과 감소폭 감안분 1.0%p는 납득하기 힘든 인상 근거”라고 설명한 바 있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한 지난해에는 경영계가 불참한 가운데 근로자와 공익위원만 표결에 참여해 10.9%의 인상률을 의결했다. 당시 위원회는 산정근거로 ‘협상배려분’ 1.2%p에 ‘산입범위 확대 감안분’ 1.0%p를 제시했는데, 경영계 입장에서는 이것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계는 최저임금 적용 노동자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라면 월 200만원 이상이 필요한데, 이를 맞추려면 적어도 시급 9000원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결국 공익위원들은 ‘노동자 생계’와 ‘경제 여건’이라는 두 진영 논리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

사용자위원 일동은 의결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최근 2년간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절실히 기대했던 최소한의 수준인 동결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결과”라면서도 “2.87% 인상안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금번 최저임금 결정이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세종=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