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최저임금 8590원]최저임금 속도조절 현실화
12일 오전 5시 반,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13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0년 최저임금 시급을 2.9% 인상한 8590원으로 의결했다. 위원 27명 중 15명이 사용자위원 안에 찬성표를 던진 결과다. 박준식 최임위원장이 표결 결과가 표시된 모니터 앞을 지나고 있다. 세종=뉴시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의 한 공익위원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노동계가 ‘2020년 1만 원’은 포기하는 대신 ‘2022년 1만 원’은 꼭 지키겠다는 전략으로 6.3% 인상안을 제시한 것 같다”며 이날 새벽 결정된 2020년도 최저임금 심의 과정을 이렇게 전했다. 다른 공익위원은 “중재 구간(심의 촉진 구간)을 제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사 금액 차가 작아 바로 투표에 부칠 수 있었다”며 “우리는 수정안(최종안)을 제시하라는 말만 했을 뿐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고 투표만 했다”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9%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되기까지 노사 양측과 공익위원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있었다. 올 5월 공익위원이 교체되며 중도 및 보수 성향 전문가들이 대거 들어온 것도 낮은 인상률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노동계, 명분 실리 모두 패배’
효과는 상당했다. 공익위원 표를 얻으려면 노동계는 과도한 금액을 낼 수 없고 경영계도 삭감만 고집할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노동계 8880원(6.3% 인상), 경영계 8590원(2.9% 인상)이었다.
지난해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9명 전원이 최종 표결에 불참했다. 2015, 2016년에는 근로자위원이 전원 불참했다. 표결에서 들러리를 설 바에야 불참을 통해 명분은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양측 위원 전원이 참여해 각자의 안으로 결정되도록 전력투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결국 공익위원 9명 중 6명이 경영계안에 찬성하며 노동계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결과를 맞았다.
최임위 표결에서 공익위원 9명 중 6명은 경영계 안, 2명은 노동계 안에 표를 던졌고 1명은 기권했다.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의 표심이 엇갈린 것이다. 올 5월 공익위원 8명을 새로 위촉하면서 보수 진보 중도 인사를 3명, 3명, 2명으로 골고루 포함시킨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낮게 결정돼 놀랐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심의를 이끈 위원장조차 표결 향방을 예측하지 못할 만큼 개개인 성향에 따른 표결 성격이 짙었다는 얘기다.
특히 2년간 29.1%나 오른 최저임금 탓에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고용 상황과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인한 경제 악화 우려도 공익위원 표심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배경 아래 정부 여당에서 나온 속도 조절론이 이들의 선택을 경영계 안 쪽으로 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나와 “2020년까지 1만 원 달성은 어렵다는 걸 대통령께서 일찍이 국민들에게 고백 드렸다. 사실 그 시점부터 속도 조절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이번 결정은 고용 상황, 경제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수용도가 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며 “최저임금이나 그런 정책들이 경제에 부담을 줬다는 걸 인정한다”고 밝혔다.
유성열 ryu@donga.com / 세종=박은서·주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