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압기 화재로 곳곳서 정전사태… 전광판 꺼지고 지하철 운행 멈춰 브로드웨이 공연 무더기 취소-중단
13일(현지 시간)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 일대에서 발생한 정전으로 화려한 색의 불빛으로 번쩍이던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 중 일부가 시커먼 빈 화면으로 남아있다. 맨해튼 서쪽의 변압기 화재로 시작된 정전에 곳곳의 지하철이 멈추고 시민 7만3000여 명이 어둠 속에서 대혼란을 겪었다. 정확히 42년 전인 1977년 7월 13일에도 벼락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뉴욕 전체가 대규모 약탈 및 방화에 시달렸다. 뉴욕=AP 뉴시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47분경 맨해튼 미드타운과 어퍼웨스트사이드 등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맨해튼 웨스트 64번가와 웨스트엔드 애비뉴 사이의 변압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곳곳이 암흑으로 변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CNN에 “기계 결함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전 후 지하철 1∼7호선과 A, C, D, E, F, L, M, Q, R, S라인 등 맨해튼을 지나는 거의 모든 지하철 운행이 약 3시간 차질을 빚었다. 록펠러센터역 등 4개 역은 운행이 중단됐다. 정전 지역에서는 도로 교통이 통제되고 신호등도 꺼져 곳곳에서 극심한 차량 정체가 발생했다. 뉴욕포스트는 “소방당국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시민들의 구조 요청이 60건 이상 쇄도했다”고 전했다. 타임스스퀘어,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주요 명소를 수놓던 불빛도 일제히 꺼졌다. 브로드웨이에서 상연 중이던 ‘오페라의 유령’ ‘라이언킹’ ‘위키드’ 등 몇몇 유명 뮤지컬도 취소 및 중단됐다.
이날 정전은 1977년 7월 13일 ‘뉴욕 대정전’이 일어난 지 정확히 42년 만에 발생해 더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한 변전소에 내리친 벼락으로 약 25시간 동안 시 및 북동부 교외에서 정전이 발생해 약탈과 방화로 이어졌다. 1700여 개 상점이 약탈당하고 3800여 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피해액도 당시로는 천문학적 액수인 3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다만 이번 정전 때는 42년 전의 강력 범죄 대신 뉴요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돋보이는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뉴욕 카네기홀의 연주자들은 정전으로 공연이 취소되자 거리로 나와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즉석 길거리 공연을 펼쳤다. 여성 작가 브리앨런 호퍼는 트위터에 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리며 “이것이 바로 뉴욕의 순간(New York moment)”이라고 칭송했다. 해당 동영상은 14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14일 오후 11시) 현재 조회수가 약 300만 건에 육박했다. 뮤지컬 ‘웨이트리스’ 등도 관객을 위해 거리에서 간이 공연을 진행했고 일부 시민은 혼잡한 거리에서 수신호로 직접 교통 통제에 나섰다. 호퍼의 트위터를 언급한 뉴욕타임스(NYT)도 “많은 공연이 취소됐지만 관객들은 기억에 남을 순간을 선물받았다”고 전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