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 중인 한국 선수단의 트레이닝복 등 뒤에는 KOREA가 아닌 A사의 이름이 크게 적혀있다.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나라 이름이 쓰인 복장과 용품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이지만 이번 대회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다른 국가 선수들이 같은 복장을 입고 유대감을 과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최대 규모 수영 대회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대한수영연맹의 안일한 행정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수영연맹은 다시 A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때가 7월1일이다. 세계선수권 개막을 불과 열흘 가량 남긴 시점이다.
문제는 A사가 대표 선수 전용 용품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6월까지 후원사가 아니었던 A사 입장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단 용품을 굳이 제작할 이유가 없었다.
고심 끝에 대한수영연맹은 임시방편으로 일반인들에게 판매 중인 A사 용품을 긴급 공수해 선수들에게 나눠줬다. 시중에 있는 용품에는 KOREA가 아닌 A사 로고가 박혀있다. 올해 1월 대한수영연맹과 결별한 A사가 제품에 KOREA를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재 선수들에게 지급된 물품에 KOREA가 빠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수들은 이 용품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일반인들을 위해 만든 만큼 옷에는 로고가 크게 박혀 있는데 이는 국제 대회 로고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 옷을 그대로 입을 경우 계약 위반으로 국제 연맹의 페널티를 각오해야 한다.
대한수영연맹의 파행 운영에서 비롯된 참극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옷은 필요하나 대놓고 입을 수 없게 된 선수들은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붙여 로고를 가리기 시작했다. A사가 아닌 브랜드의 옷을 입은 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A사는 ‘이번 대회 만큼은 타브랜드를 입더라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내용을 대한수영연맹측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남자 1m 스프링보드 결승에 앞서 선수 소개 당시 우하람(21·국민체육진흥공단)이 입은 트레이닝복 등 부분에는 회색 테이프가 여러 겹 붙어있었다. 결승에 오른 12명 중 트레이닝복 뒷면에 나라 이름이 없었던 선수는 우하람이 유일했다. 이 장면은 FINA TV를 통해 전 세계 팬들에게 중계됐다. 이달 중순 끝난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출전 선수들은 판매용 용품 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한수영연맹은 뒤늦게 대처에 나섰다. 한 관계자는 “아티스틱 스위밍과 수구 종목 선수들에게는 A사 로고 위에 KOREA를 덮은 트레이닝복으로 다시 지급했다. 나머지 종목 선수들에게도 15일 정도에는 KOREA가 덧대인 트레이닝복을 나눠줄 계획”이라면서 “다른 업체와 계약을 하려 했는데 꼬였고, 다시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이 여러가지로 늦어져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하는 대회인데 준비가 어설펐다”고 밝혔다.
한국 선수단은 남은 기간 A사 로고 위에 KOREA가 프린트 된 요상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대회를 치른다. 대한수영연맹이 상식적인 수준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손님들을 불러놓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