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수업 못따라가 과외받는 이공대생들

입력 | 2019-07-16 03:00:00

고교 기초과목 제대로 안배운채 취업률만 보고 이공계대학 진학
학업 어려움 겪자 동기생 등에 과외… “쉬운 수능서 벗어나야” 지적도




“대학에 와서도 과외를 할 줄이야…. 수능 선택과목에서 ‘물리’를 버렸더니 대학 수업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지방 사립대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강모 씨(22)는 올 1학기 3개월간 전공과외를 받았다. 고교 시절엔 수능 선택과목인 ‘지구과학1’과 ‘생물1’만 공부했다. 물리학 기초가 없다 보니 전공수업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한 명문대 공대생에게 월 50만 원씩 주고 과외를 받은 끝에 이번 학기 전공 3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과외를 받던 학생들이 최근에는 대학에 와서도 전공 학점 취득을 위해 과외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막상 대학에 입학했는데 전공수업에 필요한 기초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이공계 학생들이 과외를 선택한 것이다.

고교에서 이과계열을 이수한 학생 중 상당수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선택과목(2과목)에서 물리와 화학을 기피하는 경향이 짙어진 데다 문과에서 교차지원을 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은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지방 4년제 화학공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 씨(25)는 “수능에서 화학은 보지도 않았는데 취업 잘되는 학과라고 해서 입학했다”며 “기초화학에서 낙제점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다가 공부를 잘하는 친구에게 시험 기간마다 5시간씩 문제풀이 과외를 받았다”고 말했다.

과외비는 고교 수준을 뛰어넘는다. 학부생 과외 경험이 많은 공학계열의 한 박사과정생은 “시험이 임박했을 땐 2시간씩 총 5회 수업을 하고 100만 원까지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만 총 4명을 과외했던 이재원(가명·29) 씨는 “용돈을 벌기 위해 중고교생 과외중개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렸더니 ‘전자기학’ ‘일반물리학’을 가르쳐 달라는 대학생들의 연락이 많았다”며 “첫 달 시급 3만 원 수준으로 과외비를 정하고, 중간고사 성적이 좋으면 15% 정도 올렸다”고 설명했다.

각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대학생 전용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 등에는 “○○과목 A+ 받은 분 찾습니다. 과외비는 시급 ○만 원입니다” 식의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성적표를 인증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과외 연결 사이트와 유사한 방식의 ‘대학생 과외 전문’ 플랫폼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이처럼 기초가 부실해 사교육까지 받는 학생들의 상황을 고려해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대는 이공계 학생을 중심으로 수업 멘토링을 진행한다. 수학이나 물리 등 이과 기초과목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서울대도 선배가 후배를 과외하는 방식의 비교과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되도록 공부를 적게 시키려는 교육, 쉬운 수능, 학습 부담 축소 경향에서 벗어나 대학교육에 꼭 필요한 교과지식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도록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재준 서울대 기초교육원장은 “물리, 수학 등 기초교육을 충실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4차 산업혁명을 논할 수는 없다”며 “대학수업을 이수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을 배제하고 쉬운 것만 학습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박나현 인턴기자 고려대 철학과 졸업